당신의 캐리어
김미소
가능한 은신처입니다
내장을 비우고 영원히 잠드는 법을 모색합니다
공원으로 진입하는 바퀴들 씨앗이 돋아날 궁리 중입니다
머리를 내민 채 표정을 물색 중입니다
당신에겐 밤으로부터 발급받은 여권이 놓여있습니다
1인용 패키지, 동행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젠 날짜 변경선을 넘고 넘어 오랫동안 흘러갈 수 있습니다
환승을 위한 절차는 간단합니다
캐리어를 내려놓고 무사 귀환을 기도합니다
남겨진 환송객들을 위해 당신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주 잠깐 망설입니다
눈을 감고 이산(離山)하기 좋은 날씨라고 중얼거릴 때,
새들이 날아갑니다 꽃을 한 송이씩 미는 꽃들로
나를 들켰다는 기분이 뜨겁습니다
선택은 언제나 하늘 아니면 육지이고
안전하고 빠른 이동만이 최선입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날면?) 잡념이 하나씩 떨어져 내려
이곳과 저곳의 차이가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하루는 더 길고 격정적입니다
풍경의 끝에서 플래시가 터져 나옵니다
발가락은 구부린 그대로 박제합니다 어떤 포즈가 적당합니까
지퍼를 열고 그늘과 그늘 사이, 무릎을 구겨 넣습니다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리고
우리가 무덤 속에 누워있을 때,
나는 당신에게 몸을 돌리며 속삭입니다.
당신, 우린 저 소리를 못 들은 체하자고.*
배웅과 마중과 환송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영혼을 잠들게 하는 밤이 완성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묘비명 변용.
― 2019년 ≪시인수첩≫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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