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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21 _ 정수자의 「여행의 표정」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4. 6. 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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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표정

 

정수자

 

길든 짧든 여행에는 마지막 밤이 온다

 

적당히 가누어온 패키지의 표정을

 

조금씩 펼쳤다 접는 마감의 수순처럼

 

헤어지기 직전에는 감상 어린 잔을 들고

 

마음 더 꺼내고 서로 더 부딪지만

 

쿨하게 몰라서 좋을 패키지니 아무려나

 

지울 거 뻔히 아는 단체사진 한 방 찍고

 

모르면서 친한 척 손 흔들고 돌아서는

 

서름히 여행을 익혔다 여름의 끝물마냥

— 『인칭이 점점 두려워질 무렵, 가히, 2024.

 

 

익숙함을 버린다는 것은 변화를 위한 하나의 도전일까. 누군가는 익숙함에 안주하는 삶을 추구하고 또 누군가는 익숙함을 자신을 억압하고 제약하는 고정된 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자신을 만나는 기회를 얻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단조롭고 반복된 삶 속에서 해방감과 낯선 기대감을 안겨주는 여행은 어떤 점에서 가능성의 세계다. 정수자 시인의 시 여행의 표정에서 우리는 여행을 통해 경험하는 감정의 진폭을 확인할 수 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배경으로 여행객들은 마치 패키지에 담긴 감정 표현 지침처럼 감상 어린 잔을 들고있다. “마음 더 꺼내고 서로 더 부딪으며 진솔한 대화를 건네는 시간이다.

그러나 짧은 여행에 현실적인 어려움까지 더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금방 잊힐 운명임을 알고 있다. 애초에 쿨하게 몰라서 좋을 패키지니감정 표현과 인간관계의 형성을 획일화하는 틀이 여행객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행 중에만 함께 하는 패키지이므로 진정성 있는 감정의 교류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단정 지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체 사진 한 방 찍고// 모르면서 친한 척 손 흔들고 돌아서는작별 인사 속에는 왠지 모르게 다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스며 있는 듯하다. 그렇게 서름히익힌 여행은 여름의 끝물을 장식한다.

여름의 끝자락에 자리한 여행의 기억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불러오지만,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태어난 이후부터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성장의 발걸음을 내디뎌왔다. 주변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낯선 곳을 향해 떠나고 신선한 경험을 추구하며 미지의 세계를 만나왔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에게 자유를 행사하는 어떤 매력으로 대변되었다. 떠난다는 것, 그것은 인간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목적지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고 만나고 사랑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10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 선정, 2022년 아크로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21 _ 정수자의 「여행의 표정」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21 _ 정수자의 「여행의 표정」 - 미디어 시in

여행의 표정 정수자 길든 짧든 여행에는 마지막 밤이 온다 적당히 가누어온 패키지의 표정을 조금씩 펼쳤다 접는 마감의 수순처럼 헤어지기 직전에는 감상 어린 잔을 들고 마음 더 꺼내고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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