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그냥 갑니다
임성구
“엄마”라는 이름이 얼버무릴 이름이던가요?
한 번쯤 불러봤어야 목 터지게나 불러보지요
조용히 한숨 섞인 잔盞을 치고, 풀만 뜯다 갑니다
―『고함쳐서 당신으로 태어나리』, 천년의시작, 2024.
“어머니”, “엄마”. 부르기도 불렸기도 했었을 단어지만 언제 입에 담아도 짠해지는 이름이 “엄마”다. 어린시절 하교 후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불러보는 그 이름. 반가운 맞이가 아니더라도 늘 있던 자리에 계심으로 안도를 느끼게 했던, 괜시리 가득해지는 이름.
좀 오래되었지만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예” 하고 대답하면 “너 말고 네 엄마”라고 부르던 이자람의 노래가 기억난다. 할아버지가 엄마를,아버지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자신의 이름 어딘가에 엄마, 아빠가 계시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필자의 경우도 앞집 엄마의 이름을 그의 딸 이름으로 써 놓은걸 보면 그 이름 안에 아이들이 살아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이 시는 아주 오래된 슬픔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시로 읽힌다.오래 전 어머니를 잃은 화자가 산소에 찾아가서 술을 한 잔 따라 올리며 절하는 이미지가 나타난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구체적이면서도 마음껏 내뱉지 못하는 한의 정서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화자의 말처럼 “엄마”가 얼버무릴 이름은 아니다.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큰소리로 부르게 되는 그 외침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부재와 결핍으로 인하여 지천명의 나이에도 엄마가 어색한 존재로 있다.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도 뱉어지지도 않는 그 이름을 천형처럼 붙잡고 사는 슬픔을 한 벌 두껍게 장착한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덜고 덜어낸 음률처럼 단형의 시조 안에서 그 슬픔이 더 짙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23 _ 임성구의 「왔다 그냥 갑니다」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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