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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23 _ 김수환의 「공터가 많아서」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4. 8. 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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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가 많아서

 

김수환

 

내가 열지 않으면 내내 닫힌 방들처럼

아무도 여닫지 않는 녹슨 손잡이처럼

자신도 가구가 돼가는 저 늙은 여자처럼

 

인적이 끊긴 골목 가로등 불빛처럼

어쩌지 못해 한 곳만 응시하는 마음처럼

등 뒤에 보이지 않는 시선처럼 그 공허처럼

 

악수하고 돌아서는 손에 남는 외로움처럼

사람도 사람에게 한때라는 생각처럼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확인처럼

김수환, 사람이 간다, 시인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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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질문은 비어있는 공간과 직결된다. 빈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 즉 무()를 상징하며 가능성과 관련이 깊다. 예컨대 가능성은 시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며 역사와 개인의 삶으로 연결되어 미지의 세계를 열고 닫는다. 일반적으로 공터는 개발 계획이 없거나 개발이 중단되어 자연 상태로 남아있는 땅, 특정 목적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땅을 의미한다. 김수환 시인의 시 공터가 많아서는 쓸쓸하고 공허한 공간인 공터를 통해 인간의 고독과 소외, 삶의 무상함을 묘사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현대인의 존재적 불안과 허무함을 드러내면서 개인의 내면적 공간과 그로 인한 심리적 상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열지 않으면 내내 닫힌 방들처럼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꽉 막힌 상태에서 관계의 허탈감은 증폭된다. 누군가의 개입 없이 고립감이 계속된다는 점은 닫힌 방녹슨 손잡이를 통해 강조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더 뚜렷해지는 적막한 마음은 인적이 끊긴 골목 가로등 불빛과 같다. 연결이 차단된 상태에서 홀로 남겨진 느낌은 어두운 그늘을 만드는데, “한 곳만 응시하는 마음등 뒤에 보이지 않는 시선은 심리적 압박을 가하면서 정서적 혼란을 극대화한다. 모든 인간관계는 일정한 시간 동안에만 유효하거나 조건에 기반하여 성립된다. 그렇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 삶의 경로가 달라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거나 종료될 수 있다. “악수하고 돌아서는 손에 남는 외로움과 같이 인간 사이의 일시적 접촉은 상호작용의 제스처이자, 순간적인 친밀감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악수 후,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면 감정적인 허기인 빈 공간이 남는다.

일시적인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 경험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사람에게 한때라는 생각”,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확인의 과정은 인간관계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변동성에 대한 통찰을 실현하는 일이다. 일시성은 단순히 고립된 경험이 아니라 다양한 장점을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이 시에서 공터는 폐쇄된 공간, 의미가 상실된 공간으로 시작하지만 무엇으로든 채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공간임을 예감하게 한다. 내면의 여백에서 성찰과 잠재력의 씨앗을 품은 풍요로운 땅, 상상의 정원이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10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2024년 제22회 유심상을 수상했다.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23 _ 김수환의 「공터가 많아서」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23 _ 김수환의 「공터가 많아서」 - 미디어 시in

공터가 많아서 김수환 내가 열지 않으면 내내 닫힌 방들처럼아무도 여닫지 않는 녹슨 손잡이처럼자신도 가구가 돼가는 저 늙은 여자처럼 인적이 끊긴 골목 가로등 불빛처럼어쩌지 못해 한 곳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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