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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감정과 언어로 풀어낸 ‘중첩’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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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4. 9. 2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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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미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슈뢰딩거의 이별시인동네시인선으로 발간

 

 

하린 기자

 

한영미 시인은 2019시산맥신인문학상과 2020년 영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이 되면서 본격적인 시단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등단 이후 꾸준히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하며 작품 활동을 해오다 2023년 영등포 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하며 신작 시집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왔다. 그러다 20247월 기대와 관심 속에 첫 시집 슈뢰딩거의 이별(시인동네, 2024.)을 출간했다.

 

슈뢰딩거의 이별은 물리학의 사고실험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영감을 받아,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이라는 주제를 중첩시키면서 그것을 시적으로 풀어낸 독창적인 작품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우리 삶 속에서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이 동시에 공존할 수 있음을 시 언어로 탐구한다.

 

고양이가 살아 있을 수도 죽어 있을 수도 있는 슈뢰딩거의 상자처럼, 시인의 시 속에서는 사랑이 끝나면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죽음이 끝처럼 보이면서도 삶의 연속을 지속한다.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그 속에서 발견되는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인간이 겪는 이별의 순간들이 완전한 종결이 아니라 계속해서 중첩되고 교차하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감정의 이분법적 구분을 허물고, 그 사이의 틈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이러한 중첩 속에서, 독자들은 사라짐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존재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슈뢰딩거의 이별은 한영미 시인이 이별과 죽음을 다루는 방식에서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의 시 속에서 이별은 고통스러운 단절이 아니라, 사랑과 그리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복합적인 감정의 흐름이다. 마찬가지로 죽음은 단순한 삶의 끝이 아니라, 생명과 존재가 계속해서 중첩되고 재탄생하는 순간으로 그려진다. ‘죽음이 삶의 이면이 아니라 중첩된 모습이라고 이해할 때, 우리는 어떠한 편견에도 사로잡히지 않는다고 염선옥 비평가는 말한다. 시인은 이러한 시적 상상력을 통해 독자들이 일상의 이별과 죽음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시집에선 물리학적 개념을 철학적 사고와 결합하여 서정적인 언어로 표현한 점이 가장 도드라진 특징이다. ‘중첩이라는 개념을 시에 도입함으로써 시인은 독자들이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익숙한 감정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만든다. 모든 경계는 그녀의 시 속에서 불확실한 동시에 가능성으로 가득 찬 상태로 남아 있다. 이는 시를 읽는 이들에게 감정적인 울림을 넘어선 철학적 사유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별과 죽음을 탐구하는 방식에 있어 한층 더 심오한 접근을 시도했다는 평을 받는 슈뢰딩거의 이별은 감정과 철학, 과학이 하나의 시적 공간 안에서 융합되게 하는 독특한 방식을 구축한다. 그로 인해 독자들은 새로운 감동을 선사 받고 깊은 성찰을 간접적으로 이루게 되는 경험에 도달하게 된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마술의 실재

 

한명미

 

무대 한가운데 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그가 내부를 열고 빈속을 관객에게 확인시킵니다 그런 다음 나를 지목해 그 안에 넣습니다 상자를 닫는 동안 한 번 더 객석을 돌아봅니다 몸을 구부려 넣는 사이 자물쇠가 잠깁니다 인사가 장내를 향해 경쾌하게 퍼집니다 시작은 언제나 이렇게 단순합니다 그가 긴 칼 꺼내 듭니다 구멍이 숭숭 사방으로 열려 있습니다 하나씩 칼이 꽂힙니다 정면이기도 측면이기도 합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자를 회전시키고 뒤집습니다 비밀 따윈 애초에 없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다리가 잘리고 팔이 잘리고 마침내 소리 없는 비명이 잘려나갑니다 그가 동백을 생강꽃이라고, 씀바귀를 신냉이라고 주문을 욉니다 나는 생강꽃이 되어 생강생각바닥 두드리고, 씁쓸한 신냉이가 되어 신냉신음되어갑니다 실체도 없이 거대한 그가 나를 어디에나 있게 하고 어디에도 없게 합니다 칼은 탄식을 재단합니다 마술이 끝나면 나는 상자에서 걸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 내가 아닙니다 상자 속 한 여자를 잊어야 합니다

―『슈뢰딩거의 이별, 시인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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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꿈꾸기를 멈춘다면

 

한영미

 

폐허의 복원은 우연한 발견 때문이었지요

 

유적이 발굴되었을 때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어요

숭숭 뚫린 구멍에 석회 물을 부어 넣었더니

놀랍게도 사람 형상이 굳어 나왔다고 해요

허공도 사실은 누군가의 틀이었던 거죠

 

그래요, 나는 당신 꿈에 주입된 복제본이에요

하지만 그런 당신도 에디션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요

 

화산폭발에 놓인 최후의 모습들을 보았어요

죽음이 간절해하는 것은 결국 삶이라는 것을

절박은 누군가의 형틀이겠지요

 

우리, 라는 자리에 석회 물을 흘려 넣고 싶었어요

껴안은 채 수천 년 묻혔다가 복원된 형상엔

영원도 묻어 있을까요

 

기억을 흘려 넣으니, 유적지의 휑한 바람벽조차

그 자리를 지키느라

그리 오래 견뎌왔다는 걸 알겠어요

 

숱한 감정이 찍혀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과정이 원형으로부터

점점 마모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서 나를 깨어내고 있어요

―『슈뢰딩거의 이별, 시인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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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이별

 

한영미

 

상자는 너에 대한 나의 두 마음

나의 두 마음이 너를 향한 확률

 

너는 살아서 빛나는 파란 눈을 보지 못하고

죽어서 굳게 내리감은 눈꺼풀을 본다

 

손을 넣어 등을 만져볼 기척도 없이

흔들어 깨워볼 겨를도 없이 너는,

 

죽음을 쓰다듬는다

쓰다듬는다 죽음을

 

그 순간부터 나는 고양이,

그에 걸맞은 이별의 자세가 된다

―『슈뢰딩거의 이별, 시인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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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한영미 시인은 2019년 《시산맥》 신인문학상과 2020년 영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이 되면서 본격적인 시단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등단 이후 꾸준히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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