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엠포커스

하린 시인의 〈감동과 감탄〉 5 _ 나희덕의 「묻다」

미디어시인 2023. 1. 20. 04:00

 

묻다

 

나희덕

 

묻어도

너무 많이 묻었어요

여기는 죽음의 무진장이에요

캐도 캐도 시체들의 잔해가 자꾸 나와요

 

얼굴이 반 이상 잘려나간 시체도 있어요

엄마는 아들을 몰라봤지만

어쩐지 그 청년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해요

 

40년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은 자식이 있어요

내가 죽기 전에는 묻어주고 가야 할 턴디,

눈 못 감는 엄마가 여기 있어요

 

시체들을 실은 비행기는 바다로 갔지요

군인들은 시체를 철로 된 레일 토막에 묶은 뒤

천으로 싸서 바다에 던졌어요

바닷바람에 떠오르거나 밀려오지 않도록

 

잠수부는 말합니다

시체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어떤 힘이 영혼을 꽉 붙잡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바다는 기억하고 있어요

철이 붉게 녹슬고 따개비로 덮인 뒤에도

작은 단추 하나가 썩지 않고 남아서 말해주기도 합니다

살육은 어떻게 은폐되는지

결국은 드러나는지

 

그 단추는 누구의 옷섶에서 빛나던 것일까요

 

제발,

더는, 묻지 마세요

 

묻어도

너무 많이 묻었어요

여기는 죽음의 무진장이에요

답할 수 없는 질문의 무진장이에요

 

― 『가능주의자, 문학동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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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을 떠나 전쟁은 곧 살인이고 살육이다. 그중에서 희생이 가장 큰 존재는 군인들이며 자신의 미래를 펼쳐보지도 못하고 죽거나 다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발적으로 군 입대를 하고 싸운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 징병을 통해서 강제적으로 군인이 되는데, 무고하게 희생당한 경우가 허다하다. 자발적으로 적과 싸우는 경우는 애국심에 의한 독립운동이나 구국 운동이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승리와 패배가 결정되니 의로운 죽음이 아닌 이상 안타까움이나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양국은 희생자에 대한 통계를 거의 발표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의 판단에 의해 죽어갔겠는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을 보면서 나희덕 시인의 묻다가 떠올랐다. 시인은 특정 사건이나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폭력과 광기에 의해 희생된 죽음에 대해 덤덤하게 언술한다. 누가 읽어도 공감이 가는 시적 진술로 되어 있어서 감동의 영역을 갖는다.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 희생자가 많이 속출할 경우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어 임시로 묘를 만들게 된다. 그럴 때 묻고 또 묻는 행위가 일어난다.(묻다에서는 바다에 수장까지 시키는 상황도 제시했다.) “캐도 캐도 시체들의 잔해가 나오는 죽음의 무진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멈출 것 같지 않은 전쟁. 그로 인한 희생자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 모두가 죽음의 무진장을 아프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시인은 진실에 대한 직관을 놓치지 않는다. “살육은 어떻게 은폐되는지/ 결국은어떻게 드러나는지에 대해 꿰뚫어 보듯 진술한다. 진실에 대해 위정자들은 관심이 없다.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철이 붉게 녹슬고 따개비로 덮인 뒤에도” “썩지 않고 남아서 말해주는 죽은 자의 작은 단추하나다. 그러니 희생당한 사람이나 남겨진 가족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슬프고 화가 나겠는가? 그런 상황을 시인은 잘 알고 있기에 죽음의 무진장과 함께 나타난 것이 진실에 대한 질문의 무진장이라고 덧붙인 것이다.

전쟁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후의 선택이다. 최후의 선택도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 신중하게 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면 좋겠다.(하린 시인)

 

 

하린

 

2008시인 세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이 있고,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와 시 창작 안내서 시클과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이것만 알면 당신도 현대 시조를 쓸 수 있다가 있음. 청마문학상 신인상(2011),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2015), 한국해양문학상 대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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