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 시인의 〈어제 읽지 못한 시〉 6 _ 이병국의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이병국
손을 마주 잡던 날들 사이로
골목은 자꾸 가라앉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쥐었다
폈다
생각이란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픈 골방이어서
유폐된 시간 속
뒤를 돌아보던 네가
마땅한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문을 나서는 것처럼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던
모든 요일이 그렇게 있다
― 『내일은 어디쯤인가요』, 시인의일요일,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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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지나온 날들은 요행이거나 다행이다. 내일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숱한 어제들을 지나왔으니 말이다. 시인은 이야기한다. “마땅한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로 네가 문을 나섰다고. 네가 그렇게 ‘다행’의 세계로 사라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봐야 했던 시인은 또, 어떤 마음이었을지, 마음이 쓰인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아팠을까.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한다. 행복은 주체의 의지와 행위에 관계하지만, 다행은 주체의 의지가 철저하게 배제되기 때문이다. 나의 것이지만 순전히 나의 몫은 아닌 ‘운수(運數)’가 ‘다행’이다. 누구에게나 다행으로 여기는 시간들이 있다.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판도라 상자처럼 열려 덫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유폐된 봉인의 시간을 우리는 ‘다행’을 느낀다. 그리고 내일도 이 ‘다행’이 나의 몫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행복이 멀다면 다행이라도 가까웠으면 좋겠다고 소원한다.(김병호 시인)
김병호
2003년 《문화일보》 등단. 시집 『달 안을 걷다』 『밤새 이상을 읽다』 『백핸드 발리』가 있음.
김병호 시인의 〈어제 읽지 못한 시〉 6 _ 이병국의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 포엠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김병호 시인의 〈어제 읽지 못한 시〉 6 _ 이병국의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 미디어 시in
우리가 다행이라고 여기는 이병국 손을 마주 잡던 날들 사이로골목은 자꾸 가라앉고주먹을 쥐었다 폈다쥐었다폈다생각이란 것이아무렇지도 않게 아픈 골방이어서유폐된 시간 속뒤를 돌아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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