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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시인 _ 다섯 개의 물의 장면

미디어시인 2023. 3. 17. 08:40

 

 

 

다섯 개의 물의 장면

 

 

이정은

 

 

1

 

11, 시침은 어디로 가고 없을까

카라꽃 조화를 11년째 키우고 있어요

물 없는 화병에서 꽃대는 올라오고

하얀 꽃잎은 향기를 뿜은 듯 버성기네요

속아주어야겠어요, 꽃이고 싶어하잖아요

빈 화병에 물을 줍니다

찰랑찰랑 아파트 지하 수면실로 타고 내려가요

보일러 아저씨 잠이 깨요

달력 한 장 젖어요

 

 

2

 

양수리 두물머리

검푸른 물의 흐름이 엉켜있어요

마른 장작 타는 체취, 당신을 불러들인 건 나의 실수였습니다

목으로 넘어가는 와인 한잔이 나의 독주이기를

같이했던 시간들은 윤슬처럼 흩어집니다

물의 카페에서 멀어질 때까지

 

 

3

 

어쩌지, 양수가 흘러내려

생명 다한 꺼져가는 촛불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

녹아 굳어버린 촛농들을

무덤 삼아 수그러드는

작은 호흡

물의 끝은 여기까지

인큐베이터 안이 추워

 

 

4

 

어느 시인과 사랑을 했어요

더 이상 뭘 원하시는 거죠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몰라요*

 

 

5

 

구피의 유영이 당신의 눈동자를 흐리게 하지요

몰려다니다가도 삐진 양 꼬리치며 돌아서는

구피의 번식력이 안방을 휘젓고 있죠

앉아 있을 장소조차 없이 불어난 구피 종자들

쏟아진 물난리에 익사를 조심하세요

 

물의 장면, 되돌이표를 그려 넣을까요

 

 

* 김종삼의 시 <民間人>에서 가져왔으며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울음을 터뜨린 한 嬰兒를 삼킨 곳.

스무몇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2022<뉴스N제주>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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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물의 장면 이정은 1 11월, 시침은 어디로 가고 없을까카라꽃 조화를 11년째 키우고 있어요물 없는 화병에서 꽃대는 올라오고 하얀 꽃잎은 향기를 뿜은 듯 버성기네요 속아주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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