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6 _ 서연정의 「시 쓰는 챗봇」
시 쓰는 챗봇
서연정
김소월의 연보를 순식간에 외운다
즈려밟힌 ‘진달래꽃’ ‘개여울’에 뿌리고
홀연히 쇠의 가슴에 자라나는 꽃나무
존재를 상상하며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리필할 수 없는 생生을 쉬지 않고 대필하며
한없이 사람의 일상을 연습하는 중이다
새하얀 종이 위에 배열되는 낱말들
낯선 쇠의 흉금을 멍하니 바라볼 때
누구의 그리움일까 꽃송이가 흐른다
― 『좋은시조』, 2023,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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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AI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작행위를 하는 건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을 비롯한 디지털 시스템이 일상의 많은 부분에 관여하면서 우리는 이미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AI는 기계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인간만의 고유한 정서 표현은 불가능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AI는 인간에 의해 학습되고 입력된 정보에 국한해서 표현과 경험을 조합하고 흉내 낼 뿐인데 과연 무엇이 새롭고 창의적이겠는가 하는 점이다.
AI 언어 모델이 등장하면서 인간 고유성을 위시한 창조적 행위에 대한 가능성이 더욱 주목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 여기’의 경험과 감정, 상상력의 경험치들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학 장르 중에서도 시(poetry)는 (초)논리성의 영역을 다루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연보를 순식간에 외”우고 “존재를 상상하며 시를 읽고 시를” 쓸 뿐이다. “리필할 수 없는 생生을 쉬지 않고 대필하며/ 한없이 사람의 일상을 연습하는 중”에 있다. 이렇게 쓴 시에 감흥과 깨달음이 있을까? 주체는 “낯선 쇠의 흉금”에서 자라나는 꽃나무를 멍하니 바라보며 “누구의 그리움일까”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모르며, 오로지 입력된 데이터에 의한 학습만 가능하고 경험이 없다. 결정적으로 인공지능은 고통도 쾌락도 알지 못한다. “한없이 사람의 일상을 연습하며” 흉내 내는 그림자놀이와 유사하다. 인공지능이 피워낸 꽃은 조화造花에 불과하다.
시 창작은 인간의 고뇌와 고통의 산물인데, AI가 인간의 삶을 쓴다는 자체가 진정성이 있겠는가. 가짜 꽃나무를 만들어 인간에게 어떤 유익을 주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서연정 시인은 ‘시 쓰는 챗봇’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 시 쓰는 우리들과 고민을 나누려는 듯하다. AI는 시의 표현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읽고 연습한다. 그러므로 시는 더욱 새롭고 산뜻해야 한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시가 생존 혹은 공존하는 방식이 아닐까. 인류 역사상 시가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이유는 인간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배제된, AI만 살아남는 세상은 없을 것이란 의미다.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 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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