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포커스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16 _ 김영순의 「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

미디어시인 2023. 12. 8. 10:18

 

 

 

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

 

김영순

 

서귀포 몽마르트르 솔동산길 오르다가

그저 비나 피할까 잠시 들른 이중섭 거처

일본서 당신의 부고가 손님처럼 와 있네요

 

수백여 통 남편의 편지,

그 편지 한 장 없어도

붓과 팔레트마저 미술관에 기증하고도

서귀포 피난살이가 그중 행복했다니요

 

돌아누우면 아이들 돌아누우면 당신

게들은 잠지를 잡고 아이들은 게를 잡고

오늘은 별 따러 가요

하늘 사다리 타고 가요

 

* 이중섭 화가는 아내를 발가락이 길다고 발가락 군이라 불렀다.

 

김영순, 밥 먹고 더 울기로 했다, 시인동네, 2023.

 

---------------

 

 

이중섭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그림이 연상된다. 아니, ‘그림을 보면 이중섭이 연상된다는 말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는 유독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소의 표현을 통해 내면의 의지를 폭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 했다. 특히 앞발에 힘을 모으고 언제든지 튀어 나갈 것 같은 역동적인 소의 모습에서 이중섭의 마음가짐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소는 우리나라 몸이야, 소의 눈은 우리나라의 정신이고, 나는 반드시 소 그림을 통해 정신을 표현해 내고 말 거야.”라는 이중섭의 다짐 속에서도 라는 소재에 대한 강한 의지와 애정을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소는 이중섭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민족의 정서를 담은 소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그는 일본 유학길에서도 소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면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중섭은 20세기 대한민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해방과 한국전쟁 시대를 살아간 그는 주로 작품 속에서 향토적인 소재로 해학을 곁들여 천진무구한 정감을 담아냈다. 이미 이야기했듯 그는 주로 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그의 작품에 적지 않게 등장하는 또 다른 소재는 아이들이다. 그는 전란과 이별로 심신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가족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마음을 그림에 담았다. 그가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때는 제주도에서의 1년과 그 이후다. 이중섭의 아내는 제주도에 머물던 시절이 생활은 궁핍했어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피난민으로 참담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부인과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편지화를 보내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김영순 시인의 시 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에서 그가 사랑했던 아내 남덕과 나눈 러브레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아이 손바닥 크기의 종이에 남긴 수백여 통의 연서는 삶의 애환을 보여주는 증표다. “돌아누우면 아이들 돌아누우면 당신이 있던 서귀포의 방을 여전히 더듬으며, 끝까지 가족이라는 소원을 놓지 않았던 이중섭.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네 가족이 함께 했던 서귀포 피난살이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는 하루치씩의 불씨를 얻었다. “게들은 잠지를 잡고 아이들은 게를 잡았던 기억은 가족의 재회를 꿈꾸며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로 완성했다.

이중섭에게 그림은 꿈과 사랑을 향한 절박한 몸부림이었지만 그는 그림 속에서 한순간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오로지 그림을 통해서만 미래를 꿈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장난기는 도약을 위한 발걸음으로 느껴진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 그가 소식을 주고받는 방식은 하늘 사다리라는 목이 긴 기다림이었다. 오랜만에 그 가능의 공간에 자리 잡은 이중섭의 문을 두드리고 싶어진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에 선정되었다.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16 _ 김영순의 「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16 _ 김영순의 「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 - 미디어 시in

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 김영순 서귀포 몽마르트르 솔동산길 오르다가그저 비나 피할까 잠시 들른 이중섭 거처일본서 당신의 부고가 손님처럼 와 있네요 수백여 통 남편의 편지,그 편지 한 장

www.msi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