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7 _ 이토록의 「플라스틱 트리」
플라스틱 트리
이토록
전나무 엉덩이에 플러그를 꽂는다
오늘은 거룩한 밤
성자가 태어난 날
울음이
강보에 싸여 말구유를 타고 온다
캐시밀론 솜눈을 거실 가득 내려야겠다
종소리도 닿지 않는 불 꺼진 첨탑 아래
남몰래 아이를 지운
마리아가 우는 밤
죽은 나귀 발자국들 공중을 걸어가고
밑동을 다 들어낸 불구의 기억인지
나무는
뿌리도 없이
우듬지만 푸르다
― 『흰꽃, 몌별』, 작가,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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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은 성탄의 분위기에 들떠 밝고 활기차다. “전나무 엉덩이에 플러그를 꽂”자, 화려한 장식이 매달린 나무에는 형형색색의 빛이 화사하게 반짝거린다. 그러나 연말의 겨울은 가장 춥고 어둠이 긴 계절이기도 하여, 어느 때보다 사회에 그늘진 곳에 희망과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 계절에 환영받지 못하고 소외된 채 시름에 겨워하는 이들이 있고, 그 고단한 삶에 희망을 찾지 못해 우는 엄마가 있다. 우리는 말로 여러 번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 이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거나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인색하다. “종소리도 닿지 않는 불 꺼진 첨탑 아래”는 “남몰래 아이를” 지울 수밖에 없는 슬픈 사연을 지닌 마리아가 있다. 곧 태어나야 할 성자聖子를 지웠다는 것은, 세상이 아직 성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세상은 전혀 구원받을 준비도 희망을 얘기할 상황도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종소리가 닿지 않는 이곳은 불빛에서 멀어져, 누군가의 손길이 미처 다다르지 못한 곳이 되어 버렸다.
플라스틱 트리가 아름답다지만 진짜 나무가 아니듯, “죽은 나귀 발자국들”이 “공중을 걸어가”는 행위도 뜬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고통받는 현실과 동떨어진 채 겉돌고 있다. 세상에 구원과 희망을 떠벌리면서도 구원과 희망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결여된 슬픔 가득한 현실을 고발하는 듯하다. 게다가 “밑둥을 다 드러낸 불구의 기억인지”, “나무는 뿌리도 없이 우둠지만” 푸르다. 불구는 다 갖추지 못한, 온전하지 않은 몸을 말하는데, 밑둥을 다 드러내고 뿌리마저 없는 우듬지만 푸르다는 것은, 삶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우듬지만 푸른 것은, 그야말로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모습을 은유한다.
우리는 신神으로부터 구원과 희망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인 우리가 스스로 신神의 대리자가 되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사랑과 배려, 이해와 포용을 실천한다면 지상낙원이 도래하고 진정한 구원과 희망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나아가야 할 참모습이 아닐까. 플라스틱 트리는 진짜 전나무가 아니라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화려한 빛을 뒤집어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답게 꾸며진 말과 화려하게 치장된 외형을 경계하고 늘 그 속에 감춰진 진정성과 의도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정성 있는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이미 구원과 희망을 만난다.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 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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