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17 _ 정지윤의 「그리움의 안전지대」
그리움의 안전지대
정지윤
투명한
슬픔 한 방울
나뭇잎에 반짝일 때
한 손에
거울 들고
먼 곳을 비춰본다
눈부신
벼랑 끝에 또
다른 벼랑 있을까
― 정지윤, 『투명한 바리케이드』, 여우난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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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유난히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품고 있는 비극적 요소( 프라이의 순환적 상징의 양상에서 보면 가을은 비극, 비가(elegy)의 원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때문일까! 10월, 11월은 요동치는 감정 때문에 제어하기 힘든 경우도 종종 만나게 된다. 특히 바람, 낙엽, 비, 단풍, 추억, 음악 등 자연환경의 변화와 감성을 자극하는 물리적인 것들의 등장 그리고 과거 좋았거나 나빴던 경험이 만들어낸 기억의 소환은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기억은 시간이 아니다(『투명한 바리게이트』, 73쪽)”라고 말하는 정지윤 시인의 고백처럼 기억, 특히 강력한 슬픔으로 점철된 기억은 시간 안으로 포섭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것이 되고 만다.
‘나뭇잎에 반짝이는 투명한 슬픔 한 방울’. 선명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이 문장 안에서 어떤 사건의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특히 ‘투명한’이 가지고 있는 순수성에서 대상에 대한 암시적 기능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손에/거울 들고/먼 곳을 비춰”보는 행위는 화자의 그리움이 기거하고 있는 위치를 보여 준다. 가깝지만 먼 곳, 멀지만 가까운 곳. 그곳에 살고 있는 그리움은 언제나 불안하다. 나뭇잎 끝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최후의 순간 이후에 또 다른 벼랑이 있을지 모를 불안 속에서 자신의 그리움이 가지고 있는 불안전지대를 슬프게 바라보고 있다. 투명한 이슬 한 방울에 매달려 있는 슬픔은 “찬란한 슬픔”처럼 ‘눈부신 벼랑’ 그 마지막 역설적 공간에서 생성되고 있어 끝이 아닌 더 깊은 벼랑을 인식하게 한다. 평생을 두고 그리워할 그들(벼랑에서 죽어간)의 안위가 궁금하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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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안전지대 정지윤 투명한슬픔 한 방울 나뭇잎에 반짝일 때 한 손에거울 들고 먼 곳을 비춰본다 눈부신벼랑 끝에 또다른 벼랑 있을까― 정지윤, 『투명한 바리케이드』, 여우난골,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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