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포커스

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9 _ 손영희의 「뿔이 무슨 상관이랴」

미디어시인 2024. 3. 15. 14:43

 

 

 

뿔이 무슨 상관이랴

 

손영희

 

이제 막 촉을 내민 콩잎이 사라진 건

 

뿔난 짐승이 산을 내려왔던 흔적이다

 

갑자기 뿔이 솟는다 거칠고 뾰족하다

 

목숨을 담보한 익숙한 허기 앞에

 

물어뜯고 으르렁대며 뿔과 뿔이 맞붙는

 

세상이 어깃장을 놓아도 동은 또 터오고

 

― 『세상의 두근거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인동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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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에게 뿔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지켜내는 기능을 할 뿐 아니라 먹이 사냥에도 큰 쓸모를 발휘한다. 또한 뿔은 권력과 명예를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립과 갈등에서 비롯된 분노나 적개심을 표상하기도 한다. 주체의 콩밭에 이제 막 촉을 내민 콩잎이 사라진 사건을 폭로하는 것으로부터 이 시는 출발한다. 밤사이 뿔난 짐승이 산을 내려와 밭을 헤집어 놓았다는 것을 주체는 알고 있다. 그래서 밤사이 자신의 콩밭을 헤집어 놓은 산짐승에게 주체의 거칠고 뾰족한 뿔이 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콩이 자라는 밭은 먹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의 공간이다. 산짐승들도 먹고 살기 위해 뿔을 세웠을 테지만, 콩밭의 주인도 동물의 습격이나 외부의 위험을 방어하고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거칠고 뾰족한 뿔을 세웠을 것이다.

 

목숨을 담보한 익숙한 허기 앞에”, 뿔과 뿔을 맞대고 물어뜯고 으르렁대며” “세상이 어깃장을 놓아도 동은 또 터온다. 뿔과 뿔이 부딪혀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겠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태평하게 돌아간다. “뿔이 무슨 상관이랴라는 제목은 뿔을 세우는 일이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읽힌다. 뿔은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애착이며 집념이다. 다시 말해 삶의 의지에서 뿔이 솟았다고 보면 된다. 내가 어쩌다 뿔을 달고 흉악스러운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것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콩밭을 지키지 못하면 콩밭 주인은 생존을 위협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 정도의 무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왜 그 무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하며 살아가냐고 꾸짖는 것은 뿔 달린 생명에 대한 부정이나 다름없다.

 

자기가 물리지 않으려면 먼저 물어야 하고, 자기가 뿔에 치이지 않으려면 먼저 뿔로 상대를 쳐야 한다. 이는 매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노자는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으니(천지불인天地不仁), 세상에 혜택이나 관용을 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자연은 그저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순환 원리로 돌아갈 뿐, 그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 자신을 키우고 지키기 위해 때로 거칠고 뾰족한 뿔을 세워야 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뿔과 뿔을 부딪치며 아귀다툼에 머문다면, 세상은 무간지옥無間地獄이 될 것이다. 상극은 늘 상생으로 귀결된다. 결국 치열한 대립과 갈등은 더불어 살아가려는 지혜화합의 의지를 낳아, 공생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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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이 무슨 상관이랴 손영희 이제 막 촉을 내민 콩잎이 사라진 건 뿔난 짐승이 산을 내려왔던 흔적이다 갑자기 뿔이 솟는다 거칠고 뾰족하다 목숨을 담보한 익숙한 허기 앞에 물어뜯고 으르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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