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19 _ 김양희의 「지금 이 속도가 좋다」
지금 이 속도가 좋다
김양희
그림자로 펼치는 설치미술가 구름이
지표면 군데군데 작품을 드리운다
장광설 다 생략하고
작가 마음 그대로
지나간 그림자는 돌아오지 않는 재료
모두가 다른 시각 모두가 다른 걸음
구름은
지구를 누비며
늘 첫 작품을 내건다
― 김양희, 『제라하게』, 작가, 2023.
‘무엇을 써야 하나?’ 작가로서 우리는 늘 질문을 품는다. 질문은 시간을 탐구하는 수단이자 방법이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내다본다. 이는 관찰자의 위치와 속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므로 질문은 시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얻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때에 맞춰 자기 삶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머문 자리는 도통 완성을 모른다. 그저 우리 삶에 속속들이 관여하는 시간의 그림자를 껴안고 살아갈 뿐이다. 이때 시간의 의미는 현실을 비틀고 순간을 포착하면서 우리를 붙잡아 두기도 밀어내기도 한다.
예술가는 창작을 위하여 오랫동안 시간에 매달린다. 무한한 가능성과 감정,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창작 과정에서 샘솟는 영감을 바탕으로 나와 타인과 세상을 마주한다. 예측 불가능한 광기와 황홀의 상태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예술가는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보고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탐색하는 과정을 창작 과정의 결과물로 증명한다.
여기 김양희 시인의 시 「지금 이 속도가 좋다」에서 우리는 한 예술가의 초상을 만날 수 있다. “그림자로 펼치는 설치미술가 구름”은 자신만의 여정을 위하여 “지구를 누”빈다. “지표면 군데군데”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름의 모양을 통해 예술가가 추구하는 표현의 자유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최대한 “장광설 다 생략하고”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작가 마음 그대로”를 담아낸다. “지나간 그림자는 돌아오지 않는 재료”이다.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히면 진정한 오늘의 의미를 느끼기 어렵다. 순간의 순간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의 경험과 배경은 사물에 대한 인식과 해석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아주 짧은 동안에도 “모두가 다른 시각 모두가 다른 걸음”으로 발을 옮기고 있다. 우리에게 매일은 “늘 첫 작품”과의 싸움이다.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제10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 선정, 2022년 아크로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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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19 _ 김양희의 「지금 이 속도가 좋다」 -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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