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수상한 조진을 씨의 웃긴데 슬픈 이야기들
― 전윤호 우화집 『애완용 고독』이 가진 매력
하린 기자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꾸준히 잇고 있는 시인 전윤호 시인이 첫 우화집 『애완용 고독』을 달아실출판사에서 펴냈다. 전윤호 시인은 1991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동안 『정선』,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연애소설』, 『늦은 인사』, 『봄날의 서재』,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등의 시집을 펴냈고,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편운문학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이번 우화집은 ‘조진을 씨’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27편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우화집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진을 씨는 외계에서 온 이방인인데 그가 지구에 온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애완용으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대신 “슬픔, 가난, 고독, 침묵”을 키우고 있는 조진을 씨는 시인, 작가, 번역가 등으로 위장한 채 살아간다. 당국에서는 그를 위험인물로 분류하고 수배중인데,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고 수상한 사람, 마음이 여린 사람 등으로 여기며 흥미를 갖는다.
이런 이상하고 수상한 조진을 씨를 통해 시인 전윤호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이것은 지구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그냥 어딘가 존재하는, 어쩌면 지금은 소멸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어느 날 문득 이 별에 떨어진 이방인―이상한 조진을 씨―에 관한 수상한 이야기이다. 조진을 씨는 ‘왜 나는 살아 있는가?’란 의문보다 더 오래 살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묻기엔 이미 다 살아버렸다. 그럼 이제 조진을 씨는 죽어야 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다른 별로 점프해야 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혹여 슬픔과 고독과 가난을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는 조진을 씨를 만나거든 더 이상 무시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마시라. 무작정 피하지 말고 한번 피식 웃고 가던 길 가시라. 그는 단지 가난한 시인일 뿐이니까.”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조진을 씨는 “지구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경계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 슬픔과 고독과 가난을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는 별종인”인 셈인데, ‘조진을’이라는 이름에서 은연중 드러나듯이 결국 지금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을’들에 관한 우화적 코드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살펴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우화집이다. 가볍게 읽게 되지만 의미 있게 각인될 『애완용 고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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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구절 맛보기>
사직서 쓰는 아침
전윤호
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자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
산채 잡혀 먹히기 싫은 심정으로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 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 『애완용 고독』, 달아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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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온 부고
전윤호
한밤중 전화로 모르는 사람의 부고가 떴다. 고인의 이름을 읽는다. 모래처럼 씹히는 생소함. 서걱거리는 병명. 울어야 하는 사람들은 지금 검은 옷을 입을까 아니면 투덜거리며 다시 잠들까. 죽음은 결국 찾아오는 채권 추심업자. 저 이름에서 한 자만 바꿔도 옳은 부고가 되겠지. 어차피 달아난 잠, 답장을 보낸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기운 내시길.
— 『애완용 고독』, 달아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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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용 슬픔
전윤호
조진을 씨는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반려동물에 관심이 생겼다. 주인에게 사랑을 주는 개나 고양이는 얼마나 귀여운가. 밤낮없이 찾아오는 뜬금없는 외로움도 물리쳐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했던 술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좁은 공동주택에 살고 있었고 반려동물은커녕 제 한 몸 먹고 살기도 빠듯했다. 그래서 조진을 씨가 선택한 반려동물은 슬픔이었다. 얼마나 좋은가, 슬픔은. 일단 어린 시절부터 접해 그 생태를 너무 잘 알았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때 활발하게 움직이는지. 그는 슬픔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픔은 돈이 들지 않았다. 재워야 할 집도 먹여야 할 사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 『애완용 고독』, 달아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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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꾸준히 잇고 있는 시인 전윤호 시인이 첫 우화집 『애완용 고독』을 달아실출판사에서 펴냈다. 전윤호 시인은 1991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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