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속의 꽃, 꽃 속의 섬을 미학적으로 펼지는 시인
―박선우의 다섯 번째 시집『임자도, 홍매화에 매혹되다』더푸른테마시인선으로 발간
김네잎 기자
2008년 《리토피아》신인상으로 등단 후 시집 『임자도엔 꽃 같은 사람만 가라』 『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스트인가』 『하나님의 비애』 『섬의 오디세이』를 발간하고, 제주 기독문학상(2010년), 전북 해양문학상(2019년),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2019년), 열린시학상(2020년), 전국계간지우수 작품상(2023년)을 수상한 바 있는 박선우 시인이 더푸른테마시인선 003번으로 시집 『임자도, 홍매화에 매혹되다』를 발간했다.
이번 시집의 테마는 ‘꽃’이다. 그것도 임자도에서 자생하거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꽃이다. 그런 꽃을 테마로 한 이번 시집은 역설과 묘사가 압권으로 작용하여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 준다. 박선우 시인은 이미 1004개의 섬을 보유한 신안군에 있는 섬을 대상으로 테마시인선 001번 『섬의 오디세이』(더푸른, 2020.)를 발간했었다. 『섬의 오디세이』는 섬에 대한 본질성과 근원성을 실감 나게 펼친 시집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다.
박선우 시인은 그렇게 오랫동안 본질적인 것과 근원적인 것에 대한 시적 탐구를 해왔다. 그녀는 시적 대상을 절대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대상과 하나가 되어 대상이 가지고 있는 결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시를 쓰는 내내 대상을 분신처럼 품고 살아간다. 대상을 섣불리 아는 체하지 않으며 대상이 자신이 간직한 비의(秘意)를 내밀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래서 얻어지는 나만의 본질성을 시인은 포착한다.
따라서 이번 시집에서 다루고 있은 홍매화, 튤립, 맨드라미, 감자꽃, 여뀌꽃, 소금꽃 등은 살아있는 실체로서 작품 속에 존재한다. 관조자의 눈으로 포착한 것이 아니라 내밀한 경험자의 감각으로 그것들과 함께 살았던 흔적이 언어화되어 자신만의 형상을 띤 채 놓여 있는 것이다.
『임자도, 홍매화에 매혹되다』는 언제나 섬과 꽃에 진심인 박선우 시인이 펼치는 살아있는 꽃의 향연이다. 그 매혹적인 향연을 만난 독자들은 그녀의 노력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시집 속 맛보기>
임자도, 꽃이 오고 사람이 온다
박선우
바다는 어느 섬을 표류하다 이곳에 정박했을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산란을 한다
햇볕과 바람이 육지로 향하고 상흔을 입은 불구의 기억들
모래밭을 빠져나와 꽃이 되려 한다
임자도는 오색 수를 놓듯
한 땀 한 땀 백만 송이 꽃을 피워낸다
음표를 달고 발성하는 꽃들
청량한 바람을 몰고 온다
해안선 모래밭에선 낮달이 달려오고
바닷새들은 일제히 허공을 포기한다
꽃들은 비장한 모습으로 꽃들이 되고자 하고
오직 색만을 고집한다
색으로 말하고 색으로 표현하는 임자도의 꽃
색의 본능만이 낭자하다
색 색 색
꽃들의 은어가 주목받는 곳
해석하려는 해석당하는 꽃과 사람 사이
임자도, 꽃이 오고 사람이 오는 섬이다
—『임자도, 홍매화에 매혹되다』, 더푸른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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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서옥도*
박선우
눈발이 날린다
한파도 개의치 않는 매화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빙의가 된다
농축과 함축의 광기
가지는 역사가 되고
꽃은 의지가 된다
정신이 치밀하고 섬세해서
안쪽을 넘보던
한파도 멈칫한다
화선지 위 꽃은 실물이고 상징이다
눈 오는 날 꼭 와서 그림을 보아라
지금도 매화서옥도엔 조희룡이 산다
*우봉 조희룡의 작품
—『임자도, 홍매화에 매혹되다』, 더푸른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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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대련*
박선우
가는 겨울과 오는 봄의 간극은 얼마쯤일까?
가늠할 수 없는 여백 사이로 홍매화 꽃눈이 트이면
그의 눈이 매의 눈이 되어 밀착한다
꽃은 그가 되고 그도 꽃이 된다
살얼음에 실금이 가도 붓끝이 지날 때마다 피어나는 맑은 기척
한 송이 한 송이 홍매화가 향기를 뿜는다
가지가 뻗어가고
말문을 튼 매화가 목소리를 내밀지만
진경 앞에선 언어도 사치일까?
오히려 그는 말문을 닫는다
그가 마침내 신들린 듯 붓끝을 휘두른다
벙글고 또 벙그는 수백 개의 꽃잎
화농처럼 붉은 시간, 봄의 농도가 짙어진다
무게 중심이 슬쩍 봄 쪽으로 기운다
*우봉 조희룡의 작품
—『임자도, 홍매화에 매혹되다』, 더푸른출판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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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네잎 기자 2008년 《리토피아》신인상으로 등단 후 시집 『임자도엔 꽃 같은 사람만 가라』 『홍도는 리얼리스트인가 로맨티스트인가』 『하나님의 비애』 『섬의 오디세이』를 발간하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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