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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의 시적 효과가 일으키는 매혹

미디어시인 2024. 12. 17. 14:23

원도이 시인의 제9회 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토마토 파르티잔출간

 

 

김네잎 기자

 

9회 동주문학상을 수상한 원도이 시인의 수상 시집 토마토 파르티잔이 달을쏘다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동주문학상 심사평에서 장석주 시인은 원도이 시인의 작품은 사물과 현상의 낯익음과 낯선 틈을 파고들며, 시적 제재에 칼집내기를 하고, 아이러니와 상상력을 더해 현실 너머로 시를 부양하는 과정이 공감을 얻었다고 평했다. 원도이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윤동주 시인이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를 찾았던 소회를 밝혔다. “절망적인 시대의 한복판에서도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고뇌하며 성찰한 시인의 내면과 상처와 슬픔에 대해서 비로소 깊이 생각해 보았다고 술회를 밝혔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로서 안온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온 제 삶이 부끄러웠다.”제 시야말로 너무 쉽게 쓴 시가 아닌가 반추했다고 피력했다.

 

원도이 시인은 2010년 농촌문학상을 수상하고, 2019시인동네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첫 시집 비로소 내가 괄호 안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시인동네, 2020)이 시대의 온갖 존재들의 삶을 특유의 이미지로 몽타주하여 보여주는 독특한 기획자라는 평을 얻었고,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발표지원)을 수혜했다. 그리고 제2회 경북문예현상공모 대상을 수상하며 시단에 실력 있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번 시집 토마토 파르티잔에는 누르끼리하고 푸르스름한 죽은 자의 물 같은 물, 검은 침묵, 푸른 노래, 수의빛 하늘, 검푸른 공포, 빨간 사과의 통증, 핏빛 열매, 초록 발톱, 보랏빛 목마름, 순백의 벽, 오렌지빛 오후등 채색된 감정과 사물이 곳곳에 등장한다. 시인은 바닥이 사라졌거나 새가 날아간 상실의 자리에 누군가 은폐한 색깔을 발굴하여 재구성했다. 색이란 눈과 뇌에서 느끼는 합성된 감각이다. 즉 시각적 정보들은 개인의 경험과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고광식 평론가는 해설에서 화자 앞에 놓인 삶은 모호한 그림이어선 안 된다.”선과 색으로 칠해져 타자가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진술한다. 이는 원도이 시인의 시가 파격과 일탈의 사유로 나아가는 자유로움”(장석주, 심사평)에 기인한 까닭이다.

 

그래서 원도이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해방감을 느낀다. 화자는 소통을 방해하는 벽을 허물기 위해 벽을 토마토처럼”(고광식, 해설) 말랑말랑하고 흐물흐물해하게 삶자고 제안한다. 가벼워서 자주 날아줘야 하는 새와 초록에 갇힌 가을 색깔들 그리고 자기 행성 속 감정에 갇혀”(휴게소)있는 우리를 해방시키려는 시인의 시도는 성공한 듯하다. 시인 또한 나는 나를 향해 계속 달”(시계)리는 방식으로 실존적 자유를 지향한다. 마침내 시인이 도달한 지점엔 또 어떤 빛나는 것들로 우리를 매혹할지 다음 행보가 무척 궁금하다.

 

 

<시집 속 시 맛보기>

 

그네

 

원도이

 

발이 닿지 않아서

바닥이 사라져서 좋습니다

흔들려서

흔들리기 좋아서

한시도 멈추지 않아서

멈출 수가 없어서

앞으로 뒤로 꼭 그만큼만 가고

그만큼만 돌아와서

물러나도 더 물러설 수 없어서

물러난 곳이 하늘이어서

공중에 매달려서

날 수 있어서

아주 잠시 나비가 되어서

아이가 되고 놀이가 되고

구름이 되어서

그리고 지상에 닿았을 때

잠시, 어지러워서 좋습니다

―『토마토 파르티잔, 달을쏘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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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파르티잔

원도이

토마토를 얼마나 많이 던져야 하늘이 붉어질까  

 

사랑은 토마토처럼 붉어지는 것

자주 으깨지는 것

붉은 표정으로 익다가

건널목 정지선에서 바라보는 노을 같은 것  

 

대체 어느 길목에서 우리의 토마토가 붉어졌을까  

 

냉장고 속에서도 토마토는 익는다

열면 붉어지고 닫으면 캄캄해지는 우리의 서랍은 안녕한가  

 

푹 삶아 껍질을 벗겨낸 토마토처럼

그때 우리의 여름은 몹시 붉었다  

 

지금 건널목을 지나는 열차의 표정은 왜 무심할까  

 

사랑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토마토는 식탁 위의 파르티잔이야, 아니 주방의 게릴라야  

 

당신의 왼쪽은 왜 붉지 않은가  

 

아주 많은 날 우리는 토마토를 던지고 으깨는 데 소비했다  

 

잘 익은 저녁을 써는데 토마토의 감정이 흘러내린다

기분에 따라 토마토는 과일이나 채소로 바뀌기도 하지만

양상추와 브로콜리 앞에서 기꺼이 과일이 되고

후라이팬 속에서 구워지는 채소가 될 수 있다  

 

얼룩덜룩해지다 드문드문 물크러지다

어두워지면 게릴라처럼  

 

탁자 위에서 사라지는 토마토

―『토마토 파르티잔, 달을쏘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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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생각

 

원도이

 매미울음은 왜 폭우처럼 쏟아지는가

울음은 왜 수종을 가리지 않는가

소리를 뒤집어쓰고 지나가는 여름의 하얀 뺨은 왜 실룩거리는가

비가 떨어지는 하늘은 왜 수의빛인가

낮이 저녁처럼 왔다가 죽은 자처럼 가는 중인가

그동안 여름은 피였고 불이었고 찰진 반죽이었으므로 몸 곳곳에서 물이 빠지는 중인가 그래서 미꾸라지를 씹는 맛만 여름의 입술에 남았는가

분꽃이 피면 사람들은 왜 벼랑 끝으로 모여드는가

벼랑 끝에서는 여름도 신발을 벗고 맨발이 된다 발바닥은 맨발이 되어서야 눈이 생기고 따끔따끔 모래를 읽고 차갑고 싸늘한 바닥을 읽어내는가

흙의 마음까지 읽겠다는 건가

읽히고 싶지 않아서 흙의 끝에서 벼랑이 되는 건가 

맨발이라야 발바닥은

검고 입이 없다 그러나 나뭇잎을 내세워 종일 지껄이고 있다

저 숱한 초록의 말들 사이로 밤이 오고 있는 건가 죽은 자들처럼 나뭇잎이 생기는 여름 숲에서 초록뱀 같은 생각들은 왜 망초 사이를 지나가는가

뱀은 장난감이 아니고 과자가 아니고 독초처럼 쓸데없는데 초록이 악마의 독을 상징하던 때도 있었다는데

여름의 생각은 잡풀처럼 왜 자꾸 돋아나는가 

―『토마토 파르티잔, 달을쏘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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