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젊은 시인의 시선〉 특집 _ 김지민 시인 강우근 시인 편

미디어시인 2025. 2. 7. 09:08

 

 

서약 외 2

 

김지민

 

내 눈을 감겨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몇 사람이 일어서고 몇 사람이 돌아온다.

하객을 등지고 선 두 사람은 바다를 향해 놓여 있는 신발 한 켤레 같다. 도저히 다음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다.

 

희고 납작한 돌 하나가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지나간다.

 

돌은 두 사람의 머리 위에 집을 짓듯이 두 사람을 공중에 걸어놓듯이 영원히 곤두박질치지 않을 듯이 느릿느릿 지나가고 하객들은 눈으로 돌을 쫓는다.

두 사람이 볼 수 없는 희고 납작한 돌을.

 

슬퍼 보여요

 

두 사람은 손을 맞잡는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얽히고 풀어지고 또 서로 바짝 끌어당기는 동안

하객들은 여전히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지나는 돌을 본다.

 

앞사람의 뒤통수에서 발견한 흰 머리카락처럼 슬픈 예감이 하객들 사이에 머무르고

예식장 맨 뒤에 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천천히 돌아선다.

하객들은 붉은 손바닥을 흔들며 두 사람을 배웅한다.

 

돌아오지 마세요.

돌아오지 마세요.

 

그러나 떨어질 것이다.

 

*내 눈을 감겨주세요, 기도시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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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연습

 

 

 

입구에서 시작하면 풀 수 없는 미로

출구에서 시작하면 풀 수 있다

들어서는 것과 돌이키는 것은 그렇게 다르고

 

점점 망설이는 의태어가 되어간다

이제껏 성큼성큼 망해왔으므로

 

끝에서부터 시작하고 싶다

연월일시 받아 적다

다 알아버려서 돌려보내는 점쟁이처럼

 

구겨진 종이와 누군가의 대뇌피질 같은

미로 속

내 모든 실패의 동선

한 눈에 내려 보고 싶다

 

멈춰야 한다고

돌아오는 길 내내 비참할 것이라고

 

예언은 언제나 정확해서 가소로운 것이었지만,

 

뒤에서부터 완성한 그림이 환해보이는 날들이 있었다

 

죽을 날을 미리 받아본 사람의

흉내 낼 수 없는 결연함

 

통성명도 없이 나란히 누운 남녀의

둘도 없는 막역함

 

끝에서부터 몰아본 드라마 속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서먹해지고

알았던 것을 모르게 되고

잦아들고

감추어져

한치 앞을 모르는 얼굴이 되어가는 풍경

 

만류하고 싶다,

 

멀리 내가 휘적휘적 걸어간다

척 보기에도

시커먼 물웅덩이 철벅철벅 밟고 간다

 

너는 끔찍한 일을

웃기게 말하는 사람이 될 거야

 

마을 입구에 앉아

젊은 배낭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긋한 눈빛으로

소용없음의 소용을 이해해보았다

 

그러기로 했다면

그럴 수 있지

 

쭈뼛쭈뼛 나아가다가

쭈뼛쭈뼛 뒤돌아보는 사람이 있다

 

눈이 마주친다면 있는 힘껏 웃어줄 것

 

안장에서 손을 뗀 아이 아빠처럼

뒤를 모르는 척 손 흔들어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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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 뷰

 

 

 

바다와 백사장의 간격이 좋아 젖게 만들지만 넘어서지 않는 탐하면서 취하지는 않는 그러니까 저기 걸린 애드벌룬

온몸에 모래를 묻히고 걸어가는 저 연인은 한시도 손잡지 않는다 간격을 유지하며 걸을 뿐인데 그들은 연인으로 보이고 녹아내리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콘

백사장 속으로 뚝 뚝 떨어지는 단맛 손 쓸 수 없게 될 때 내던지고 달아나는 뒷모습 나는 거기까지 보고

나갈까? 묻지만 옆 사람은 쉬고 싶어 희고 차가운 이불 속으로 파고들고 나는 다시 눈 돌려

이거 강화유리인가? 유리창을 주먹으로 툭툭 치고 옆 사람은 말이 없어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다가 너무 지루하다 누군가 죽 그어놓은 수평선 여기까지야 더 넘어오지 마

백사장을 훑고 다니는 저 가족 아이가 모래를 한 움큼 쥐어 공중에 흩뿌리면 엄마는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아이는 신이 나 더 더 흩뿌리고 엄마는 점차 웃음기를 잃어가고 머리통들

저 해묵은 인파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고 어차피 흩어질 거면서 모이를 던져줄까 발치로 모여 들어 내게 재밌는 것을 보여줘 팔다리를 펼치고

백조로 변해 봐 나는 옆 사람의 귓불을 만지고 손톱 끝으로 살짝 누른다는 게 그만 감정이 실리고 옆 사람은 자세를 바꾸며 제발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둬 소리 없이 항변하고 나는 흰 이불 위로 팔다리를 흘리고 젖은 머리칼 퍼뜨리고

바다 위에 누워 있는 저 사람 점점 바다 쪽으로 밀려가는 것 같다면 내 착각일까 번뜩이는 은빛 호루라기

아이가 백사장을 달려가다 고꾸라질 뻔 했는데 엄마가 아이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나이스 캐치 내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옆 사람은 호응하듯 부스럭거린다

 

 

 

우산들 외 2

 

강우근

 

비가 내리자 그는 현관에 잠들어 있는 새를 집어 바깥을 나선다. 한동안 고요하고 투명했던 새가 그의 머리 위로 펼쳐진다. 거리에는 그의 새뿐만 아니라 검고, 파랗고, 노란 새들이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있다. 투명한 새로 그는 하늘을 보고 있지만, 새는 언제든지 바람을 타고 날아가려고 한다. 바람이 불어 날개가 흔들릴 때마다 새는 그가 자신의 긴 꼬리를 놔버리기를 바란다.

새를 끌고 나온 사람들은 새의 중심을 감당해야 한다. 모든 바람 안에서 새는 스스로의 첫 숨을 가지려고 한다. 날개가 펼쳐진 온 세상의 새들이 횡단보도에서 교차할 때, 그가 시계를 보면서 문득 거리를 멈출 때, 그는 투명한 새를 놓친다. 검고, 파랗고, 노란 새가 연달아 날아간다.

젖어가는 그는 새가 희뿌연 하늘과 같은 색이 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사람들이 뛰어갈수록 멀어져가는 새들. 새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든다,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거리에서 작아져 간다. 사방에서 내리는 비가 사람들을 상영한다.

그는 2층 카페에 들어가서 뜨거운 커피를 시킨다. 창 바깥에는 여전히 수많은 새를 붙잡으며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나뭇가지 위에 앉은 작고 노란 새를 넋 놓고 본다. 그녀는 비가 많이 와서 늦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외투는 그와 같이 흠뻑 젖어 있다. 그녀는 검은 새를 놓쳤다고 한다. 검은 새는 아주 크고 긴 꼬리를 가졌다고 한다. 검은 새가 그렇게 잘 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젖는지도 모르고 시야에서 검은 새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잠시 검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거리에는 새의 날개를 펼치고 접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거리 곳곳에서 새의 꼬리가 파르륵 떨린다. 아이들은 하늘로 완전히 떠나버린 새들처럼 비를 맞으며 뛰어다닌다. 그들은 실내의 새와 같이 한동안 카페에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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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어느 손으로 쥐어야 하나

 

 

 

우산을 번갈아 쥐고 있다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그러다가 비가 쏟아질 수도 있겠지

오늘은 비가 60프로의 확률로 온다고 했으니까,

40프로의 확률로 비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우산은 어색해지고

내가 왼손잡이였는지 오른손잡이였는지 헷갈리는 하루

왼손잡이였다가 오른손잡이가 된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르나

밥은 오른손으로 먹고 왼손으로 이빨을 닦는 사람

왼손으로 아무도 모르게 방문을 닫고 오른손으로 창문과 커튼을 활짝 여는 사람

사람들이 무거워지는 짐과 함께 우산을 접었다 펴는 하루

우리는 비가 내리는 같은 꿈속으로 흠뻑 빠질 수 있을까

잠들기 전과 잠에서 깬 후가 가장 어색해

이불 안으로 손을 넣어야 할지, 바깥으로 빼야 할지

창문을 닫고 자야 할지, 열고 자야 할지

깜빡 잠에 들면 또다시 더워서, 추워서 깨어나는 사람들

망설임은 매일 생겨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다가, 어느 날 비가 되어 쏟아지지

그만 비가 쏟아지면 알게 되지

축축한 어깨를 맞대며 우산을 나란히 썼던 사람이 뭉게구름처럼 사라졌다는 것을

함께 주스를 마시던 컵이 퐁당퐁당

거품 가득한 설거지통에서 씻겨지다가 더는 쓸 수가 없게 된 것을

마지막은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로 어정쩡하게 떠나가

꼬리를 하늘로 치켜세워야 할지 땅으로 내려야 할지 모르는 빳빳하고 부드러운 동물의 꼬리 같은

이 우산을 언제까지 번갈아 쥐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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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같은 사람이 온다면

 

 

 

꿈속으로 찾아온

영문을 모르는 사람에게 흔들리는 마음이 있어

 

노란 지붕과 파란 지붕은 닿을 수 없지만

노란 지붕에 사는 사람과 파란 지붕에 사는 사람이 화들짝 잠에서 깨어나

 

동시에 바깥을 보는 장면처럼

태풍은 오고야 말지

 

우리는 태풍 때문에 얼굴을 못 보고, 운행이 중지된 버스에 타지 못하고, 닫힌 상가를 들어갈 수 없겠지만

 

작았던 마음이 이렇게 거대해진

태풍의 심정은 어떨까 이름을 가지는 순간부터 사라질 일밖에 없는

 

바다의 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열대지역의 나무의 이름을 가진, 해가 질 때의 풍경의 이름을 가진 태풍이 지나가고 있어

 

지금 누가 이렇게 옥상의 빨래를 흔드는 걸까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대상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은 무서움 때문일까,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일까

 

붙잡히지 않으려면 우리도 몸을 함께 흔들어야 할까 우리는 모두 창문을 걸쇠로 잠가놓았지만

 

길 한복판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있어 어떤 비는 슬픔을 흘려보내지 못해 그 슬픔을 헤매는 사람으로 남겨 놓는다

 

또 한 번 우리는 태풍을 견뎠다고 말하겠지만

 

옥상에서 빨래 몇 벌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듯이, 멍든 문짝을 버리고 새로운 문을 달듯이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들 중 누군가는 영영 보이지 않는다

 

 

*자료 제공: 계간 열린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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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 외 2편 김지민 “내 눈을 감겨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몇 사람이 일어서고 몇 사람이 돌아온다.하객을 등지고 선 두 사람은 바다를 향해 놓여 있는 신발 한 켤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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