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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감각과 가능성 탐색

미디어시인 2025. 3. 10. 16:43

이주빈의 첫 시집 몽골인들을 위한 클럽타이피스트시인선으로 출간

 

 

하린 기자

 

시집 원고 투고 당시 경계에서 태어난 언어, 그리고 소외된 이들의 또 다른 세계의 기록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출간이 결정된 바 있는 이주빈 시인이 첫 시집 몽골인들을 위한 클럽을 타이피스트 시인선으로 출간했다.

 

시인은 고립된 존재들, 사랑받지 못한 자들, 사회의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담아내면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과 연대를 발견하는 과정을 탐색한다. 그로 인해 이 시집은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위한 은유적 공간처럼 보인다. 구조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삶을 어떻게 감각하고 견뎌내는지를 기록한다. 시인은 격렬하고 파편화된 이미지들 사이를 오가며, 존재의 부재와 결핍을 탐색하고 불완전한 것들의 조각을 모아 그들만의 언어로 존재를 증명한다.

 

이주빈이 호명한 시집 속 화자들은 사회에서 배척당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어떤 배려나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 채로 마음의 어두운 구석을 오래 들여다본 존재들이다. 가족은 혈연으로 연결된 존재들이지만, 정작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알고자 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타자일 뿐이다. 이는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강요되는 특정한 감정이 화자의 내면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현상의 반영이다.

 

이주빈 시집에서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은 과연 우리는 소외와 고립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이다. 이것은 이주빈이 가진 미학적인 창작 능력과도 결부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발견할 수 있다’ ‘가능하다이다. 이주빈은 단순히 패배의 서사가 아니라, 경계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감각과 가능성을 탐색함으로써 불가능한 세계 속에서도 소외되고 고립된 존재들이 갖는 내재된 꿈을 형상화한다. 외부자, 패배한 자,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세계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음을 시로써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몽골인들을 위한 클럽은 허무주의적인데 허무주의를 뛰어넘는, 냉소적인데 냉소주의를 뛰어넘는 젊은 시인의 다부진 목소리로 가득하다.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하고 있는 이 시집에서 이주빈이 들려주는 목소리는 사랑받지 못한 이들에게 연대적 위로와 위무를 아낌없이 선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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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프리즘

 

이주빈

 징후들 가까스로 나타나는 징후들 귀가 녹는다. 스스로 만든 감옥의 철창은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만다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꼭 살아서 가족을 찾겠다는 다짐 무의미한

합정에 다녀왔고 만나기로 한 누군가는 없었다 나 역시 거기에 없었다 기분일까 천국과 천국 사이를 가로지르는 장공들

뛴다 뛰었다 뭘 것이다 걸었고, 걷는다 과연

중세에 관하여 의사는 물었다

의사는

물었다 몸은 대답하지 않았나

o

낭비된 몸과 낭비되지 않은 몸 어느 쪽도 선택될 여지가 없다 밝은 미소를 떠올리면 잠들기 어렵다 끝이라는 말조차도 끝을 기약하고 있진 않으므로

친해질 구실이 없다고 여겨지는 인물이 꿈에 나왔다 숲을 걸었다 숲이 숲인지 모를 때까지 그의 꿈이 었는지, 그가 나의 꿈을 꾼 것인지

지나간 애인에게는 멋진 선물을 주고 싶었다 부끄럽지 않은 선물이고 싶었고, 그게 시라고 믿었던 시 절이 있었다 시는 부끄러웠다 여름날 편히 누울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름날의 기억으로 살다가는 아무 계절에도 살지 못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따져 볼 일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날을 떠올리면 좋은 날은 떠오른다. 그 기억으로 평생을 팔아 차울 수도 있다 내가 믿는 천국이란 물구나무선 재 하얀 출발선을 재빠르게 지나가는 것이다

o

파티는 끝났다 낡고 더러운 침대에서 죽어갈 것이다 아침일까? 에르베 기베르 김춘수 재호기 읽는 다 너무 많은 활자들 활자와 활자

다른 활자를 해엄치고 싶었다 죽은 사람이라는 건 다행일지도

벨을 놀랐다 하얀 수의 입인 의사 나다나서

말했다

말했다

나만

말했다

o

말했나

말했을

의사는 무례했으나

슬프지 않았다

듣지 못하는 나를 사랑했으므로

의사가 건넨 매듭을 묶었다 웃었다 거듭되는 매듭도 나를 막지 못할 것이 을 미는 동안 매듭은 스스로 조여질 줄 안다

뛰며

뛰고

마시고

마시며

울다

나란히 누운 의사들 눈과 눈을 맞춰 눈치 살피는 창문과

창문들

두 번 다시 나를 만나지 않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거라는

사실

빛도 어둠도 없는

―​『몽골인들을 위한 클럽,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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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007128

 

이주빈

 

사랑하는 아버지.

구글맵을 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이국을 욕망합니다 마요르카의 해변들. 칼로 데스 모로. 알쿠디아. 에스메랄다. 그랜. 모를 얼굴을 보았고, 손 인사도 나눴습니다. 낮잠을 자기도 하며. 그 순간만큼은 한국어를 잊으며. 해변 앞에서만큼은 절망이 없습니다. 수영: 시작.

오래되었습니다.

기쁘지 않습니까? 피를 나눴지만 서로에 대해서 아는 건 한 가지도 없군요. 알고자 하는 노력도 없이

태어나서 제가 제일 많이 강요받았던 것은 동정심이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보다 부모를 불쌍히 여기라는 말. 그것은 절대적이었으며. 영영:

끝나지 않을 주기도문 같았습니다.

떠나고 싶었으며

편견 없이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종종 쉽게 들킬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상한 일 : 왜 거짓말 칠 때마다 박수를 칩니까? 사랑해 줍니까.

아버지도 사랑받고 싶었습니까.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랑받고 있습니까.

저도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가족 :

웃는 얼굴로 서로의 목을 조르는.

좋은 기분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목이 졸릴 때 좋은 기분을 느낍니다.

아버지. 과거의 일이 현재까지도 효력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빚과 빛. 더미. 질병은 사람을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것처럼 만듭니다.

필요 이상으로 증오를 거두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각자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듯.

용서하거나,

용서받을 시기를 놓쳤다는 건.

기쁜 일입니다.

지금부터는 사랑하는 일에 대해 적어야겠습니다. 종로와 합정.

쓰는 일.

쓰지 않는 일.

노래 부르고 춤추기. 원을 그리기 : 사랑의 기억을 투영하기. 저녁으로 카레를 먹기. 청소와 빨래.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달리기. 실감하는 일. 사랑의 기억 : 나눴던 사랑.

: hope you find happiness no matter what :

바보 같은 나의 고양이.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이름 :

다행히 이들 대부분은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에겐

향기가 납니다.

꿈을 꾸지 않아도. 바깥은 아름답다는 것. 지구의 낮과 밤은 구분되어 있다는 것. 낮에는 빛.

밤에는 어둠.

사실입니까.

이 모든 게 내리고 나면.

떠나게 되는 날.

멸망을 택하고 말 것입니다

​―​『몽골인들을 위한 클럽,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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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주빈

 

눈이 부시다

침대가 두 개 놓인 방 안에 혼자 누워 있으면 고양이는 울지 않아도 운다

현관문을 두드린다

신음 소리가 들린다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경찰이 경찰입니다 소리치는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전부 거짓은 아니겠지만

선생님께 혼이 났다 선생님은 나에게만 엄격하시다

선생님 씨발 저한테 왜 그래요

온몸에 새겨진 문신을 읽는다 내 손으로 직접 묻고

떠날 것이다

친구가 말했다 너는 자주 

 싸움을 통해 정당화하는 것 같다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정당일까

정답일까

오늘은 현명해지기로 한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세상엔 무서운 일이 많군 그렇다고 계속해서 도망칠 수는 없지만

영영

걱정하지마걱정하지마적정하지

?

숲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젊은 시인들은 시 속에 숲을 자주 들먹이는군요 정작 숲에 가볼 일도 없으면서 그런 시에 누가 현혹됩니까 사랑다운 사랑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숲에서 발견될 시체를 향해 일동 경례

묵념일까?

시대의 사랑은 있습니까

옛 친구와는 이별한다 분명해지고 싶다 분명해지고 있다 분명은 사람을 허무주의자로 만든다 기분을 알 수 없던 탓에 엄마는 무명 소설가였다

잘못 태어났다 엄마는 나로 인해 죄가 없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나를 숲에 버렸다 숲으로부터

쫓고 쫓기며

내게 외로워질 용기 있다 말뿐인 말을 주워 담는 동안 안타깝게도 이 시에는 이미지가 없다

이미지란 없다

없는 이미지는

없는 걸까 구상 중인 미래를 덮고 어제로 간다면

이미지는 과연

잿더미가 될까

두 사람이 하는 사랑을 보고 있다 

​―​『몽골인들을 위한 클럽, 타이피스트,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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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 기자 시집 원고 투고 당시 “경계에서 태어난 언어, 그리고 소외된 이들의 또 다른 세계의 기록”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출간이 결정된 바 있는 이주빈 시인이 첫 시집 『몽골인들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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