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포커스

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30 _ 김하정의 「나르시시스트」

미디어시인 2025. 5. 12. 23:27

 

 

나르시시스트

 

김하정

 

1. 가면

 

욕망의 메타포를 노려보는 사냥꾼

능란한 수사로 활시위를 당기면

어둠 속 먼 거리라도

과녁을 명중시키지

 

2. 가스라이팅

 

저자의 의도는 눈치채지 못했어

행간에 숨어서 다가오는 숨결이

두 귀를 닫히게 하고

두 눈을 멀게 했어

때로는 오타가 소름처럼 돋아났어

지문을 더듬어가며 자세히 읽어봤지

하지만 변명 가득한

각주들이 달려 있었어

 

3. 후버링

 

촘촘히 엮고 엮어

계획표를 짠 거야

빛을 속이려면 은사銀絲가 필요해

그 사내 입속에는 늘

독침이 고여 있겠지

 

― 『파피루스가 일러스트에게, 가히,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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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Narcissist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사랑과 집착,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공감 부족을 보이는, 이른바 이상화理想化된 자신에 대한 자기애적 왜곡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나르시시스트도 그 성격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지만,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여러 특징이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공감 능력 부족, 관심과 칭찬에 집착하는 특성 외에도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성격,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타인을 이용하고 착취하려는 성향이 있다. 또한 끊임없이 질투하고 비교하며, 승부욕이 강해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자신의 능력과 업적을 과장하고 특권의식이 있으며 타인의 약점을 찾아 비난하고, 관계에서 일방적인 태도를 보이며 쉽게 화를 내는 등 감정 기복이 심하다. 또한 남들이 자신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한다고 착각한다. 술이나 흡연에 쉽게 중독되고, 기다림을 정말 힘들어한다는 기질도 있다. 그들은 일반적인 이기주의자와는 다른 특징을 갖는다.

가면은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상대방을 홀리는 도구다. 그것은 욕망의 메타포를 노려보는 사냥꾼으로 어둠 속 먼 거리라도” “능란한 수사를 활용해 과녁을 명중시켜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나의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이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시작되며, 인간 사냥에 들어간다. “저자의 의도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주체는 어느새 행간에 숨어서 다가오는 숨결에 의해 두 귀가 닫히고 두 눈이 멀어 버린다. “때로는 오타가 소름처럼 돋아났지만, 그럼에도 지문을 더듬어가며 자세히 읽어본다. 그러나 변명 가득한/각주들이 달려 있을 뿐이다.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결정하지 못하고 누군가로부터 조정당하고 있는 것인데, 뒤에서 조정하는 그는 비겁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후버링Hoovering’은 사람을 감정적으로 조종하는 사람(나르시시스트)이 한 번 떠난 사람을 다시 끌어들이려는 행동을 뜻하는 말이다. 마치 청소기처럼 사람을 다시 빨아들이듯 관계를 재개하려고 유인하는 행위에 비유된다. “촘촘히 엮고 엮어/계획표를 짠것이지만, “빛을 속이려면 은사銀絲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 사내 입술에” “늘 독침이 고여 있는 이유는 스스로가 우월하다거나 사랑스럽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왜 우월하고 사랑받아야만 하는지그 이유를 외부적으로 찾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나르시시스트의 공통된 특징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인은 가면과 가스라이팅, 후버링을 통해서 자기애自己愛의 왜곡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어 가면서 진실은 외면한 채 정신 승리라는 자기최면을 거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개인 중심적인 가치관을 강조한다. 지나친 자기중심성으로 흘러가는 경우 나르시시즘으로 변질될 수 있다. 특히 SNS는 자신을 꾸미고 과시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여서 자칫 팔로워 수좋아요등으로 자기애적 성향을 부추기는 구조를 갖게 한다. 성공과 성취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을 브랜드화하면서 돋보이게 해야 하는 분위기는 타인을 수단화하거나 자기중심적 태도를 강화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르시시즘은 불안정한 자존감에서 비롯된다. 자기 내면의 불안을 감추기 위해 과도하게 자신을 포장하고 외부로부터 끊임없는 인정과 칭찬을 갈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자기애가 병적인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자기 사랑은 타인을 진정으로 품을 수 있게 되며,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건강한 자기애는 자기 존중과 타인 존중이 조화를 이루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 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 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대명사들,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 눈물로 읽는 사서함, 길 위의 문장, 경계의 시학, 거울과 응시, 현대시와 인지시학, 유목의 서사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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