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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시인 시집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로 제7회 ‘김종삼시문학상’ 수상

현장+뉴스

by 미디어시인 2024. 4. 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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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웃음과 유쾌한 외로움의 블랙 유머

 

 

이미영 기자

 

김경미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민음사)가 제 7회 김종삼시문학상에 선정되었다. ‘김종삼시문학상은 김종삼 시인을 기념하기 위하여 2017년에 제정된 상이다. 선정기준은 등단한 지 10년이 넘은 시인을 대상으로 해당 연도(심사일의 전 해)에 발간한 시집 중 김종삼 시 정신에 부합하는 시집을 대상으로 한다. 그동안 당선 시집으로 심보선의 오늘은 잘 모르겠어, 박상수의 오늘 같이 있어, 길상호의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남진우의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등이 있다. 정호승(시인), 이숭원(평론가), 김기택(시인), 심재휘(시인), 오형엽(평론가), 곽효환(시인), 신철규(시인) 등으로 구성된 운영위원들은 김경미의 이번 시집을 반어와 역설을 활용하여 슬픈 웃음과 유쾌한 외로움을 절묘하게 표현했으며 그것을 통해 외롭고 낮고 소박한 존재의 소중한 아름다움을 저절로 드러나게 했다고 평가했다.

 

김경미 시인은 1983중앙일보에 시 비망록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 『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 『, 나의 세컨드는』 『고통을 달래는 순서』 『밤의 입국심사를 비롯해 라디오 오프닝 시집 카프카식 이별이 있으며, 산문집 바다, 내게로 오다』 『행복한 심리학』 『심리학의 위안』 『그 한마디에 물들다』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등이 있고, 노작문학상, 서정시학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대 KBS 클래식 FM 김미숙의 가정음악라디오 작가로 활동하며 매일 아침 청취자들에게 직접 쓴 시를 전하고 있다.

 

김기택 시인은 김경미 시인의 시가 씹을수록 맛이 난다며 다음과 같이 평한다. “슬픈 웃음과 유쾌한 외로움이 문장 곳곳에서 배어 나와 자꾸 곱씹게 된다. 반어와 역설의 장인이 쓴 문장의 맛이다. “떠나면 후회할까 봐 후회를 떠나지 못하는 󰁚 신선한 베이커리 빵집처럼/ 언제나 당일 아침에 만들어서/ 당일 밤에 폐기하는 결심들내 마음속 치욕과 앙금이 많은 것도 재밌다는 시의 구절들에서 심술궂고 고약한 일상을 뒤집는 맛이 있다. 이렇게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속삭임이 들린다. 외롭고 낮고 소박한 존재는 얼마나 위대한가. 실수와 잘못이 빚은 일상은 얼마나 슬프고 흥겨운가. 혼자 노는 쓸쓸함과 외로움의 놀이는 얼마나 유쾌한가. 평범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존재 속에 숨어 있는 영혼은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는가. 그렇게 고독과 외로움이 지금까지 라고 불렸던 얼굴이고 목소리이며 존재 자체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김기택 추천의 말 중)

 

일상과의 낯선 거리를 빚어내는 탁월한 거리 감각이 김경미 시가 지닌 블랙유머의 특징이라면 이번 시집에서 그 유머는 날개를 달고 더 멀리 날아간다. 중년은 고독이라도 얻어야 한다는/ 구름의 귀띔이 인생의 비기처럼 들린다.(전민일보) 고독이 쉬울 수야 없겠지만 나의 운동은/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어두워지기하고 말하는 것처럼, 일상의 루틴처럼 고독 또한 성실하게 지켜야 하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시적인 내면의 목소리는 쇼펜하우어의 인생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쇼펜하우어는 슬픔과 고통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언뜻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말에서 우리는 매일 부딪치는 대상과 관계를 주체적인 관점에서 인식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가 되는 것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내면의 성장과 깨달음을 이루는 과정이다. 혼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내면의 명료성을 찾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더 깊은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지금 시를 통해 더 깊은 자아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취급이라면

 

김경미

 

죽은 사람 취급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살아있는 게 너무 재밌어서

아직도 빗속을 걷고 작약꽃을 바라봅니다

 

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

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

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 말해 버렸는데

 

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잡지를 펼치니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그 위험물 없이도 나는

여전히 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하지만

 

당신의 세계는

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

오래도록 바라보는 바다를 취급하는지

여부를 물었으나

 

소포는 오지 않고

 

내 마음속 치욕과 앙금이 많은 것도 재밌어서

나는 오늘도

아무리 희미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바다 같은 작약을 빗소리를

오래오래 보고 있습니다

―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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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은 베이커리처럼

 

김경미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나를 잘 아는 건 나의 결심들

 

가령 하루를 스물네 개로 치밀하게 조각내서 먹는

사과가 되겠다든지

밤 껍질 대신 뼈를

혹은 뼈 대신 고개를 깍겠다는 것

 

사람의 얼굴 양쪽에는 국자가 달렸으니

무엇이든 많이 담아 올리리라

 

국자가 아니라 손잡이라든가

그렇다면 뭐든 뜨겁게 들어 올리리라

 

여하튼 입을 벌리고 살지 말자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건 내 결심들

 

한밤의 기차에 올라

 

옥수수를 너무 많이 먹어

입안이 감당 안 되는 느낌처럼

 

무엇보다 창피스러운 건

 

떠나면 후회할까 봐 후회를 떠나지 못하는

 

신선한 베이커리 빵집처럼

언제나 당일 아침에 만들어서

당일 밤에 폐기하는

 

결심들만큼

 

영원히 나를 잘 모르는 것도 없다

―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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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작약이 피는 법

 

김경미

 

1

 

누군가 사하라 작약얘기를 했다

 

19세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이름을 딴

사라 베르나르 작약

우리나라 화훼 수입상이 사하라 작약으로 바꿨다

 

마음대로 줄이거나 늘린 말들이 모여

 

사하라가 되고

사라 사하라 베르베르 베르나드가 되고

버나드 사라가 되고

사라 작약이 되고

사하라 버나드 사라 카라 3세가 되어

 

사라 베르나르 작약을 퍼뜨리거나

사라 베르나르 작약을 바꾸거나

떨어뜨리거나 멀어지는 법

 

말이 없이는

사라 베르나르 작약도 애초에 없었다

 

 

2

 

벨 에포크를 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살아 있을 때 늘

()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사막이 되고

작약이 되고 사라가 된 말들이 모여

 

()을 짜는 법

 

매일매일

살아서 거기로 들어가는 아름다움 없이는

어떤 삶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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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과 옷걸이

 

김경미

 

서랍 한 개와 옷걸이 세 개로

몇 달을 산 적이 있었다

 

밤 열 시에도 창밖이 대낮처럼 환했다

 

아름다운 집들 지붕마다

빠져나온 서랍처럼

좁은 굴뚝 같은 다락방이 있었다

 

옛날엔 하녀들 방이었다고 한다

 

맞은편 집 다락방으로

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나의 다락방

한 개의 서랍과

세 개의 옷걸이가 반짝였다

 

내일 나는 서랍처럼

늦잠을 자고 종일 책을 읽는다

―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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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시인 시집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로 제7회 ‘김

이미영 기자 김경미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당신의 세계는 아직도 바다와 빗소리와 작약을 취급하는지』(민음사)가 제 7회 김종삼시문학상에 선정되었다. ‘김종삼시문학상’은 김종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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