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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36 _ 서숙희의 「반죽」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5. 12. 2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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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

 

서숙희

 

반은 죽이 되었다

반은 이미 죽었다

밤새 품은 이스트라는 해 뜨는 그곳은

첨부터 꿈이 아니라 망상의 집이었다

 

긴 시간 표정 없는 한 덩이 허연 물체

제 모양 하나 가지지 못한 무정형의 존재

실종된 이름이거나 신원 불상 추정체거나

 

물렁하고 물컹함에 통째로 삼켜졌다

이름을 얻지 못한 형체 하나가 여기

 

반 죽어

반은 죽이 되어

다 뭉개졌던 그때처럼

― 『열린시학, 2025,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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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반죽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름 없는 존재의 불완전성과 소멸, 그리고 그 속에 스며 있는 유약한 꿈과 허망함을 탐색한다. “반은 죽이 되었다/반은 이미 죽었다라는 선언은 존재의 절반은 이미 파괴되었고, 나머지 절반마저 소멸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죽음의 언어유희는, 반죽이라는 사물의 불안정한 상태를 생명력의 소멸 과정과 겹쳐 놓는다. “밤새 품은 이스트라는 해 뜨는 그곳첨부터 꿈이 아니라 망상의 집이었다고 말하는 구절은, 발효라는 부풀어 오름의 이미지가 애초부터 실현될 수 없는 욕망, 즉 허상이었음을 암시한다. ‘망상의 집은 빵을 만들기 위한 반죽의 부풀어 오름이 단지 순간적인 허기와 기대를 위한 허상임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꿈과 욕망 역시 덧없는 부풀림에 불과하다는 존재론적 통찰로 이어진다.

시인은 반죽을 긴 시간 표정 없는 한 덩이 허연 물체”, “제 모양 하나 가지지 못한 무정형의 존재로 묘사한다. 이름조차 갖지 못한 이 무정형의 존재는 고정된 정체성 없이 그저 뭉개지고 흘러내리며 물컹거린다. 이는 아직 사회적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개인이자, 완성되지 못한 꿈의 이미지로 읽힌다. 그러나 이러한 무정형은 단지 소멸의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반이 죽었다는 것은 곧 반은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형태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가능성의 여지를 품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은 실종된 이름이거나 신원 불상 추정체처럼, 실명을 갖지 못한 채 추정과 불확실성 속에 놓인 존재들이다. “물렁하고 물컹함에 통째로 삼켜진 존재, “이름을 얻지 못한 형체 하나는 곧 반 죽어/ 반은 죽이 되어놓인 자아로 확장된다. “다 뭉개졌던 그때처럼과거의 상처나 실패는 여전히 현재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주체는 반죽처럼 뭉개지고 삼켜지는 경험을 자신의 기억과 겹쳐 놓는다.

이 시는 반죽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형태 없는 존재와 이름 없는 꿈, 그리고 허망하게 무너지는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반죽은 미완성과 소멸을 동시에 품은 이미지로, 부풀어 오르는 희망조차 결국 망상의 집으로 치환된다. 시인은 생명과 죽음, 희망과 좌절, 탄생과 소멸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하게 뒤섞일 수 있는지를 차갑게 응시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절망의 반죽 속에서, 아직 정해지지 않은 형상을 통해 새롭게 빚어질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대명사들,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등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고산문학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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