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시와 비평 전문지 《포엠피플》이 제4회 신인문학상에 「구원」 외 4편을 응모한 조소연을 당선자로 확정했다.
지난 8월 31일 마감한 신인문학상에 452명의 시 2,683편이 접수됐다. 예심은 원도이 • 임효빈 시인과 김웅기 평론가가 맡았다. 예심을 통과한 30명의 응모작 가운데 9명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본심 심사 위원인 고광식 평론가와 김네잎 시인은 거듭된 논의 끝에 9명 중 조소연을 최종 당선자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합의했다.
고광식 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조소연의 작품에 대해 “시적 화자를 통해 긴 호흡에서 나오는 사유로 세계 속의 존재를 통찰력 있게 관찰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고민하며 흔들리는 현대인의 초상을 비유적 상상력의 틀 안에서 깊이 성찰했다”고 평했다. 이어 “응모작 5편 모두 시적 주제와 소재의 스펙트럼이 넓고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다”며 “적확한 표현과 사유의 디테일이 응모작 전편에 살아 있는 점“을 주목했다. 더불어 “현실의 색채와 형상을 변형하는 조소연의 시적 태도가 시를 새로운 미학적 꿈으로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조소연(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졸업)은 당선 소감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뒤에도 “꾸준히 시 쓰기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평생 시를 쓰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시를 향한 진심을 드러냈다. 시를 포기하고 싶었던 시기에 다시 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오은경 선생님과, “쓰는 자신과 읽는 타인 모두의 시선에서 시가 갇히지 않도록” 조언해준 육호수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울러 자신의 시를 세심하게 들여다봐준 문우들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또한 “해수 님, 병헌 님, 희주 님, 우리 오이시 멤버들, 저와 친구가 되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끝으로 “오래 시를 붙들고 있는 딸을 묵묵히 지켜봐 주신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더 잘 쓰고, 더 잘 살게요”라고 당선 소감을 맺었다.
당선작과 당선 소감 그리고 심사 경위, 예심평, 본심평은 2026년 《포엠피플》 겨울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11월 22일 오후 3시 선경산업 강당(인천광역시 계양구 서운산단로 3길 1)에서 열린다. 당선자에게는 상패와 3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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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미리 엿보기>
구원 외 2편
조소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
발걸음이 끝나는 곳
두 발을 모으고 원목 의자에 앉아
숲을 상상하지 않았다
유령과 천사가 아름답다고 믿는 사람들이
빛과 바람에 흔들리며 손짓하는 자작나무를
그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걷기 위해서는
짓밟히지 않았지만 짓밟혀본 적 있다고 고백하거나
피부와 체온을 바라며 부여잡아본 적 있는 손들
이제 그만 투명해졌기를 꿈꾸어야 하는지
곳곳에 남아 있는 지문은 나이기를 포기하지 않겠고
도어락보다 유리창에서 선명할 것이다
너머를 넘볼 수 있을 것 같지
그러나 나는 나의 바깥만 밟아볼 수 있다
보이지 않아도 있다고 말하고 싶은 숲은 없다
전속력으로 비상구를 뛰어 내려간다 해도
이렇게 살아있는 한 자신의 심장도 목격할 수 없는 노릇인데
어쩌면 유령과 천사를
날씨와 향기로 바꾸어 말하고 싶은 사람들
엘리베이터마다 만원이다
천사는 땀 같은 건 안 흘릴 테니
이쯤에서 그만 서로 등을 진다면
어느 눈 내리고 있는 숲속에서 이마가 차가워지지, 라고
듣는 귀가 있을까
체온으로부터 멀어지면 지켜낼 수 있다는 겨울 안에서
엘리베이터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는
가장 새것인 바지에 밀크셰이크가 쏟아진다
미안, 하지만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이 도시에서
나란히 깊어지고 있는 발들의 바깥이다
땀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
귀 뒤로 넘겨주지 못하지
냉음료의 층이 상온에서 분리되는 속도로
나무 한 그루 그림자가 외벽을 타고 올라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실내의 벽지에 번지는 오후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일은 사라지기를 바라는 자세로 임할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표정 지어 보일 수 있겠지,
혼잣말
유리컵에 묻은 입술 자국을
엄지로 문질러 지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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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
당신의 소설은 완결되었지만
나는 알아요
그녀가 아직도 물웅덩이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소설의 결말은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던 그녀가 붙잡혀
산골짜기 병동에 갇히는 것이었고
소설이 다 끝났는데
하얀 아스팔트 바닥에 물이 고이고
방치된 식물이 벽을 뚫고 자라나는 곳에서
아직도 그녀는 자신을 잊고 만 당신을 기다리는지
물웅덩이 속에 그녀의 얼굴이 갇혀 있어요
환한 하늘이 비추어지고
새가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기도 합니다
젖은 날개를 말리려고 나뭇가지에 내려앉아요
그래요 나는 알고 있어요 차가운 물방울이 뺨에 떨어지자 당신은 하늘을 올려다보잖아요 맞아요 당신은 잊은 것이 있잖아요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를 걷다가 뺨에 흐르는 차가움을 닦으면서요 멈추어 서서 마침표를 찍어버린 문장들을 떠올리고
이를테면
병동의 정원에서
햇빛에 덴 수국을 쓰다듬는 그녀의 눈
그녀의 눈이 사람들의 눈과
서로 겹치기도 합니다
산골짜기에 가본 적 없지만 산골짜기를 아는 사람들
산골짜기에 다다르지 않고
이 도시를 벗어나지 않는
버스의 유리 차창에 비추어진 채 겹겹이
그 뒤에 숨어 당신의 얼굴은
그녀가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됩니다
언니는 그녀에게 이제 그만 병동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언니에게
외딴섬으로 가 함께 살자고 하고
결말 직전에 언니는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고는 혼자 마을을 벗어납니다 이 문장까지 읽은 사람들 몰려와 그녀를 가두고 손에 식칼을 쥐여 주어요 그녀를 살려두어 언니를 만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칩니다 주인공이 서로 심장에 칼을 찔러 넣는 결말을 원하므로 사람들은 언니도 찾으려 하고 있어요 언니가 지나간 곳에 페이지 몇 장이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대로 소설이 끝나선 안 된다고 언니가 가지도 않은 산을 다 불태웁니다 페이지가 군데군데 타들어 갔어도 소설은 끝나고 버스 출입문은 열리고 사람들이 하차하면서 흩어지고 말아요
이제 언니가 아니어도 되는 당신이
도시를 걷습니다
그녀로부터 마음껏 벗어나
도착한 작업실에서
당신은 새 소설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수잔이 반지를 잃어버려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는 문장으로
끝없는 병동의 층계를 오르는 잠 속에서
가장 깜깜한 바닥으로 칼이 떨어져 꽂힙니다
소설을 쓰다 잠든 당신의 손이
잠의 바깥에서 떨리고
담뱃재가 튀어
첫 페이지가 그을리고 말아요
누구도 읽을 수 없게 되었어요
당신이 시작하지 않은 소설을 나는 읽습니다 산골짜기가 불에 타고 있다는 문장을 당신은 쓰지 않았고 수잔이 죽었다는 문장을 쓰지 않았고 언니가 아닌 당신이 반지를 끼워주었다는 문장을 쓰지 않았고 그 여백에 수잔의 발자국이 찍히고 있어요 산골짜기에 빗방울이 떨어져 물웅덩이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발자국은 지워지고 말아요 몰려들던 사람들이 그녀를 놓칩니다 그녀가 산골짜기를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봐요 내가 이렇게 모든 풍경을 문장으로 옮겨 놓았어요 당신이 쓰기 전에 나의 눈빛이 환하게 스치는 곳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그녀가 뒤따라오고
당신이 잠에서 깨자
그을린 페이지 위에 반지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이 문장으로 당신은 소설을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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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I
히피와 마녀와 나는 동화를 읽었다. 한 문장씩 번갈아 가며. 마침내 히피가 읽은 동화의 결말은 소녀의 몸은 살이었다,라는 문장이었다. 그렇게 소녀는 자신의 몸을 지니고서 숲속으로 사라졌다. 춤을 추며. 잊힌 풍습처럼.
마녀와 나는 동화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히피는 슬퍼했다. 왜 하필 소녀야. 소년도 아니고. 그리고 몸이 살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과 살로 몸이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 같냐고. 소녀가 살덩이가 아니게 되려면 소녀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 하는 걸까. 베이컨을 올린 바게트 조각. 함부로 씻어낸 샴푸 거품. 날씨를 자꾸 틀리는 예보. 히피는 이렇게 말하고서 창 바깥을 내다보았다.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절실하지 않아도 자작나무네. 어쩌면 이미 너무나도 자작나무라서 다른 비유에 대해 아쉬울 게 없는. 히피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자작나무는 자작나무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소녀가 자작나무인 척하면 우습지 않지만 자작나무가 소녀인 척한다면 마음껏 비웃어줄 수 있을 거야. 흰색 수피가 환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시선의 끝.
바람이 불어와 테이블 위의 종이를 흩어냈다.
동화책의 페이지가 뒤죽박죽 섞였다.
히피와 마녀와 나는 서로의 옷을 바꿔 입었다. 마녀가 입기에 내 트레이닝복은 조금 작았다. 히피는 마녀 모자가 어울릴 만큼 머리카락이 길지 않았다. 나는 히피처럼 배꼽 피어싱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옷이 마음에 들었다. 정체를 벗어나지 않고도 변화를 꿈꿀 수 있다. 히피는 마녀의 다크 퍼플 립스틱을 자신의 입술에 마저 발랐다. 몸을 벗어난 입이란 없다. 내가 말했다. 불가능을 되새기는 여름. 우리 셋은 저녁 식사로 뼈째 구워 육즙이 흐르는 양고기를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II
밤이 깊었다. 마녀는 동화책에 불을 붙였다. 테이블 위에는 원추형의, 챙이 넓은 마녀 모자가 놓여 있었고 페이지는 쪽수가 적힌 모서리부터 타들어 갔다. 결말은 정해져 있고 아무래도 몸을 불사를 수는 없으니까. 마녀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달빛 하나 없는 밤이었다. 마녀는 마녀답기 위해 달빛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을 테지만. 마녀는 잠든 히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뭐라고 뭐라고 읊조렸다. 형형색색으로 타오르는 악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무엇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히피가 잠결에 마녀의 스커트 자락을 붙잡았다. 그 애의 머리카락이 마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곱슬거렸다. 페이지가 타들어 가면 타들어 갈수록 연기가 시야를 흐렸다. 나는 창을 열었다. 연기가 그치지 않고 허공으로 퍼져 나갔다.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자작나무 숲길 끝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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