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3 _ 김일연의 「풍장」
풍장 김일연 윤기 도는 지렁이가 풀밭에 나와 있다 한참 지나 다시 봐도 가만히 누워 있다 햇볕에 몸은 마르는데 산세 깍깍 우는데 땅 위에 하늘 아래 장마 끝 환한 풀잎에 비이슬 묻어 있는 바람결 귀를 묻고 제 몸을 비우고 있는 크고 검은 지렁이 ― 김일연, 『세상의 모든 딸들』, 서울 샐랙션, 2023. -------------------------- 지렁이는 축축한 흙 속에 있어야 사는데, 이 시에서 지렁이는 풀밭에 나와 있다. 햇살이 너무 강해 몸이 바짝 말라서 죽어가고 있다. 마치 바람에 장사 지내는 풍장風葬 의식처럼 보인다. 풍장은 보통 바람이 많고 건조한 지역에서 빈번하게 치러지는 경우가 많다. 바람은 무형․무색․무취의 존재로,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는 공허의 상징성이 있다. ..
시조포커스
2023. 7. 22.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