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시인의 〈감동과 감탄〉 5 _ 나희덕의 「묻다」
묻다 나희덕 묻어도 너무 많이 묻었어요 여기는 죽음의 무진장이에요 캐도 캐도 시체들의 잔해가 자꾸 나와요 얼굴이 반 이상 잘려나간 시체도 있어요 엄마는 아들을 몰라봤지만 어쩐지 그 청년에게 마음이 끌렸다고 해요 40년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은 자식이 있어요 내가 죽기 전에는 묻어주고 가야 할 턴디, 눈 못 감는 엄마가 여기 있어요 시체들을 실은 비행기는 바다로 갔지요 군인들은 시체를 철로 된 레일 토막에 묶은 뒤 천으로 싸서 바다에 던졌어요 바닷바람에 떠오르거나 밀려오지 않도록 잠수부는 말합니다 시체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어떤 힘이 영혼을 꽉 붙잡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바다는 기억하고 있어요 철이 붉게 녹슬고 따개비로 덮인 뒤에도 작은 단추 하나가 썩지 않고 남아서 말해주기도 합니다 살육은 어떻게..
포엠포커스
2023. 1. 20.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