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시인 _ 책을 반으로 펼치면
책을 반으로 펼치면 김영 두꺼운 책 한 권을 딱 반으로 펼쳐놓으면 꽤 넓은 들판이 생기고 지평선이 보인다 완만한 구릉을 이루고 있는 사이 작은 냇물이 졸졸 흐른다 그 위에 양 떼를 풀어놓아도 좋고 몇 채의 집을 짓고 태어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짓듯, 울타리를 세우면 좋겠다 울타리의 용도는 옛날에도 망설였고 지금도 망설이는 일이지만 넘어오는 것과 넘어가는 것 중 어느 것을 말리는 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딱 반으로 펼친 책장에서는 여차하면 다시 접어버리면 되는 일 그러고 보니 움푹한 구릉지대나 큰 강이 흐르는 곳들은 허공이 딱 반으로 접힌 곳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반으로 접힌 책 그쯤 읽으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시시비비도 대충 가려질만 하겠다 딱 반이라는 곳들은 힘이 세다 양쪽으로 나누어 주고도 남는 ..
포토포엠
2022. 10. 20.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