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김서하
A4 용지에 원을 하나 그렸지
기준점으로부터 파문이 번지는 게 보였어
아다지오, 아다지오,
리듬이 지나간 후
나도 단일폐곡선을 따라 빙빙 돌았지
달아나는 설계도처럼
흘러내리는 데생처럼
파문은 중점을 끌고 표류했지
달리의 시계처럼 모든 시간이 다 휘어진 후
삭망과 삭망 사이 보름달이 일그러졌고
달의 흉터에 살짝 구름이 엉겨 붙었지
변신을 꿈꾸던 나는 끝내 울지 않고 침전을 반복했어
하루에 한 뼘 실선을 아껴가며 지웠어
결국 만날 수밖에 없는 귀결점처럼
한 선만 남아야 동그라미는 결정되고 말겠지만
결코 원형감옥 같은 것은 떠올리지 않았지
책상 밑은 온통 구겨진 동그라미
A4용지에 원을 하나 더 그렸지
멈추지 않고 단번에 원점으로 돌아오는 독주를 시도했어
녹아내리는 눈사람에게도 회전은 필요하지
그러니까,
내가 완성하려던 것은 시작이라는 한 점이었지
― 『가깝고 먼』, 고요아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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