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청
유혜영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부터 나는 무엇이나 찢는다 그 무엇이 뭐지? 가 될 때까지 나는 찢는다 다듬어지지 않은 질감으로 엇박자를 내는 어떻게를, 어떻게에서 수없이 도망치는 망설임을, 망설임 속에 웅크리고 있는 움찔거림을, 움찔거림의 시작인 두려움을 청바지처럼 찢는다 청색보다 더 푸르러서 새 파랗게 질리는 자존감을 찢고 있는, 저것들의 배후는 무엇인가? 꽃은 허공을 찢어야 제 맛이다 망설이며 피는 꽃은 없다 숨이 턱턱 막히는 개화의 순간에도 한 치의 거리낌이 없다 꽃은 이미 완성된 파국, 순서와 애절 따윈 필요 없다 찢청을 입고 찢어지며 찢으면서 간다 찢어져서 꽃으로 죽을 나, 다음은 그다음의 문제, 다음에 다음까지 찢는다
이것은? 멀쩡하지 않은 저 청색들의 세계
너덜너덜 헤진 후에 만나는 나다운 맨살의 세계
― 『잘라내기는 또 어딘가에서 붙여넣기를 하고』, 『천년의 시작』,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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