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김숙영
오늘은 고양이가 나를 복제했다
밤새 썼다 지운 시를 물고 달아났다
가시가 촘촘히 박힌 자학
생물로부터 멀어진 이미지들
비린내를 풍기며
행간을 물어뜯었다
언제부터 내가 야행성인 걸 들켰을까
밤에 뭐든지 가능해진다는 걸
모티브를 품은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제목도 없이 시는 출발하지만
방향과 태도만은 분명했다
내게 굶주린 것은 고독이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품기 위해
나는 유년의 잔상을 모조리 베꼈다
그런데 어느새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선 안 되는 것에 도달했다
왜 트라우마가 많은 여자아이에게
금기는 주인처럼 등장하는가
그 순간 담을 훌쩍 뛰어넘는 고양이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경계는 나를 쉽게 허락해 버리고
낙법도 없이 너머에 도달했다
그러나 세계는 끝없이 나를
하찮게 여기는 속성만 있는 곳
오늘도 난 나를 할퀴는 시를 쓴다
고양이로부터 벗어나라고 부추기는
밤을 북북 찢는다
*모방.
― 《리토피아》 2021년 겨울호 (2021년 전국계간문예지우수작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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