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장사해변에서*
최재남
바다를 헤쳐 왔지만 저 모래밭 건너지 못해
뒤엉켜 쓰러져 있는 핏물 밴 군화 자국
이따금 바람이 불면 다시 일어나 달린다
*한국전쟁 당시 장사리 상륙작전을 펼치다 희생된 학도병들이 잠든 곳
― 《시조미학》 2023 여름호, 한국시조시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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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연에서 포착한 순간들을 아름다운 언어로 직조하여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사회 현상에 대한 부조리를 파헤쳐 고발하는 비판적 사고를 신랄하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건들이 동원되어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최재남 시인이 시적 소재로 사용한 ‘장사 해변’은 특별히 관심 기울이지 않았던 장소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게 하는 정보의 기능이 있으며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전쟁의 참상과 어린 학도병들의 희생을 기억하지 못했던 역사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게 한다.
경북 영덕군 소재 장사해변에서 있었던 “장사상륙작전”은 6·25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위장 전술이었다. 주의 분산과 보급로 차단을 목적으로 14세~17세의 어린 학도병 772명이 참가했다가 많은 이들이 희생된 가슴 아픈 우리 역사다. “바다를 헤쳐 왔지만 저 모래밭 건너지 못”했던 것처럼 장사해변은 맹전의 장소이며 당시 태풍으로 높은 파고에 상륙지점까지 도착하지도 못하고 배가 좌초되어 희생이 컸던 장소이다. 비밀리에 실시되었던 작전이었기에 희생자들과 침몰했던 배 ‘문산호’는 바다에 묻혀있다가 잔해 발견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장사상륙작전전승기념관’ 입구에 모래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는 반쪽짜리 군화 발자국과 흩어져 있는 탄피들은 격전을 벌였던 당시의 상황과 희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전시물이다. 화자는 군화 발자국을 “뒤엉켜 쓰러져 있는 핏물 밴”으로 좀 더 확장된 표현을 씀으로써 현장성과 시대의 비극성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 “바람이 불면 다시 일어나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장사해변에 어려있는 어린 영혼들의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시인의 눈물어린 시선에서 발견할 수 있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 좋은 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미디어 시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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