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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4 _ 이소영의 「죄와 벌」

시조포커스

by 미디어시인 2023. 8. 1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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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이소영

 

붕어빵에 붕어 없고

비엔나엔 비엔나커피 없고

쥐포엔 쥐가 없고

세고비아엔 기타 없다고

검사님,

죄가 되는 건 아니죠, 궁금해서

 

세월호에 세월 없고

정의구현에 정의 없고

위안부에 위안 없고

아동보호에 보호 없다면

판사님,

벌을 받는 거 맞겠죠, 궁금해서

 

이소영, 두근두근 우체국, 책만드는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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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는 틈이 있어야 못이 들어간다고 생각해? 못을 박으면 틈이 생기는 거야, 여기는 못 박는 곳이야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보위부에 잡혀 온 리정혁(현빈)에게 보위부 간부가 문책을 하며 자백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이어 곧바로 증거 따윈 없어도 얼마든지 죄를 만들 수 있는 곳이야라는 말이 이어진다. 그저 가상의 드라마 속 말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 대사 속에는 강렬하고 날카로운 뼈와 칼이 숨어 있다. 이소영 시인의 언어는 부조리하고 모순된 삶을 직시하며,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현실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는 힘이 있다. “붕어빵엔 붕어 없고”, “비엔나엔 비엔나커피 없다는 말들은 그냥 대상의 이름만 빌린 것에 불과하다. 시인은 자신의 부귀와 권세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부귀·권세에 위해危害가 되는 자를 잡아다가 없는 죄를 부풀려 만들고, 그 죄에 대한 응당의 처벌을 가하는 행태를 말장난으로 비꼰다. 무고한 자에게 오히려 죄를 뒤집어씌우고, 정작 죄를 저지른 자에게는 죄를 따져 묻지 않는 현실의 문제가 행간에 있다.

 

죄와 벌은 모두 이해관계 속에서 빚어진 권력투쟁일 따름이다. 모든 개체는 생존을 위한 이해관계에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연 정의를 구현하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심판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선악善惡의 개념도 불완전하고 상대적이다. 허기진 인간과 굶주린 멧돼지가 각각 먹이를 찾기 위해 산길을 헤매다 마주쳤다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멧돼지를 잡는 것이 차선책이고 멧돼지 입장에서는 인간을 먹이로 잡아먹는 게 선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멧돼지를 잡는 일이 선이고 인간이 멧돼지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악이 된다. 반면 멧돼지 입장에서는 사람을 잡아먹는 게 선이고, 자기가 죽는 건 악이다. 자신의 생존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선악의 개념도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누구를, 무엇을 대상으로 선악의 기준을 정하고, 선악을 가릴 것인가? 지배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존과 권력에 큰 위해가 될 것 같으면 그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생존과 권력을 지키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선으로 규정한다. 여기에 공정과 상식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얼마나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인가? 권력을 쥔 그들은 공생도 상생도 라는 존재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절대적으로 완전한 선악의 개념은 있을 수 없다. ‘죄와 벌은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와 상호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죄와 벌이 사회 정의 구현과 질서·치안을 유지하는 기능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죄와 벌은 상호 간 생존을 위한 대립과 갈등속에서 누군가의 무고한 희생을 강요한다. 그래서 틈을 만들고 죄가 만들어지며 심판이 행해지면서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송희)

 

 

 

이송희

2003조선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으며 열린시학등에 평론을 쓰며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절기의 판화,아포리아 숲,이름의 고고학,이태리 면사무소,수많은 당신들 앞에 또 다른 당신이 되어, 평론집 및 연구서 아달린의 방,눈물로 읽는 사서함,길 위의 문장,경계의 시학,거울과 응시,현대시와 인지시학,유목의 서사등이 있다.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전남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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