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을 찾아
박화남
기도가 필요할 때만
찾아가 엎드렸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
모두 일러바치면
엄마는
깊고도 넓어
나보다
더 엎드렸다
박화남, 『맨발에게』, 작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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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존재는 신이 내린 존재라고 한다. 유대인 격언에 보면 세상을 살피시는 신이 모든 곳을 관장할 수 없기에 어머니를 내리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머니’라는 존재의 숭고함과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희생정신을 반영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숭고와 희생이 어머니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양육하고 가정을 돌보는 역할의 직접성과 헌신적인 모성애 때문인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애틋하게 보는 것이 일반적인 감정이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가난과 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했던 가족일수록 희생적 존재에 대한 감정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위 시의 화자는 어머니를 ‘신전’으로 여기고 있다. 신이 살고 있는 예배의 처소 신전.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가서 기도하듯 일러바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분의 너른 품이다. 종교적 믿음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신을 찾아가 고해하듯 화자는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어머니를 찾아가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하듯 화자 또한 “기도가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이기적인 존재였음을 시인하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어머니가 “깊고 넓”었던 것처럼 화자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문제의 근원을 살펴, 비난보다 용서를 종용하면서 “나보다 더 엎드렸”던 매우 성스럽고 위대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 이전에 많은 시인들이 어머니를 무진장 소금을 그러안은 바다 같은 대상 (박남철), 어진 손으로 울음을 달래주던 사람 (윤동주), 마루 끝에서 “밥 먹자”고 불러주던 존재 (문태준) 등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왔듯 화자는 숭고한 대상인 신전으로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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