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이태정
밥값도 못 해요, 밥값은 겨우 해요
언제부터 서로를 밥값으로 매겼는지
밥이란 갑甲에게 치르는
뜨거운
몸값
― 이태정, 『빈집』, 책만드는집, 2022.
‘값’이라는 단어를 읽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살고있는 아파트 주변 미용실에서 보게 된 두 노인인데 밥값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연령은 70대 전후로 보였는데 이웃으로 살면서 친분이 두터워진 사이인 것 같았다. 미용실에 파마 예약이 되어있던 한 노인이 친구분께 점심을 샀던 모양이다. 점심을 대접받은 노인은 시간으로 갚으려고 했는지 그날의 일정을 미뤄가며 이분의 파마가 끝나기까지 옆을 지키는 것이었다. 가서 일 보라고 만류를 해도 밥값을 해야 한다고 “이쁘다 이쁘다”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2시간여의 지루한 파마를 기분 좋게 지켜봐 주었다.
이분들이 보여준 ‘밥값’은 아름다운 우정으로 가슴 훈훈한 한 편의 사연을 만들어주었지만 사실 이 밥값이라는 게 생계와 맞닿을 때는 여간 슬픈 단어가 아니다. 몸값, 떡값, 품값, 말값, 똥값, 인물값 등등 검색해 보니 값과 관련된 단어가 700개가 넘는다. 그러나 유독 밥값에서 눈물이 고이는 것은 “갑甲에게 치르는/ 뜨거운/몸값”이라는 문장에서 화자의 저항의식을 보았기 때문이다. 노동으로 교환된 값어치 몸값. 몸으로 열심히 일해서 사람답게 제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 소시민의 평범한 소망 일테지만 사회는 유난히 이들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들어내는 불평등은 갑(甲)이라는 일방적 권력에 의하여 을(乙)의 노동이, ‘획득한 값’이 아닌 ‘치르는 값’으로 대체 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땀은 노동에서 나온다고 한다. ‘밥값 겨우 하는’ 사람이든 ‘밥값도 못하는’ 사람이든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땀 뻘뻘나게 맘껏 일해보는 것일 것이다. 역할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상실된 인간적 가치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화자의 시선이 값값하게 다가 왔다.(표문순 시인)
표문순
2014년 《시조시학》 신인상 등단, 시집 『공복의 구성』,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열린시학상, 나혜석문학상, 정음시조문학상 등 수상, 한양대 대학원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 좋은 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미디어 시in>
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12 _ 이태정의 「값」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3 _ 김일연의 「풍장」 (0) | 2023.07.22 |
---|---|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12 _ 이송희의 「흘러내리는 기억」 (0) | 2023.07.04 |
이송희 시인의 〈時詩각각〉12 _ 조성문의 「로켓 배송」 (0) | 2023.06.21 |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11 _ 김강호의 「밑줄」 (0) | 2023.06.12 |
표문순 시인의 〈단시조 산책〉11 _ 김영란의 「나무의 시」 (0) | 2023.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