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낱말 · 10
―착하다
문무학
착한 건 싼 게 아니고 싼 건 다 착하지 않다
사람 사이 착착 붙어 살맛 내는 착함인데
값싼 걸 착한 것으로 착각하게 하지 마라
싸구려를 착한 가격, 착한 가격 하다 보면
쓴맛뿐인 세상에 고명으로 얹히는
착함의 값이 떨어져 버려질까 두렵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는 자본주의
말이 착해져야 세상 착해지는데
말까지 돈으로 봐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 문무학, 『뜻밖의 낱말』, 뜻밖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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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 ‘착하다’는 사전적으로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람의 심성이나 언행에서 착한 행동, 착한 마음씨와 같이 사용되는 것이 일상적인 쓰임새다. 타인의 판단이나 의견에 휘둘리면서 그것이 절대적인 자신의 가치로 내면화되는 경우를 떠올려볼 수 있다. 여기에서 ‘착하다’는 것은 기존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구조에 순응하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특정한 범주로 틀짓기 함으로써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관점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언젠가부터 ‘착한’은 자본주의 시장의 경제와 관련하여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전략을 제시해왔다. 일명 착한 기업, 착한 금융, 착한 브랜드, 착한 상품, 착한 가격, 착한 소비 등과 같이 기업의 인권, 도덕, 윤리의 영역이 시장의 언어로 변형되어 생존과 경쟁력 제고의 전략이 되었다. ‘착한’의 의미와 활용 방식이 모두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되어 지배 사회의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기제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문무학 시인의 시 「뜻밖의 낱말 · 10 – 착하다」에서는 ‘착한’의 속뜻이 우리 사회 곳곳에 비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짚어낸다. 그의 지적은 ‘착한’의 의미가 ‘착한과 나쁜’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부추기면서 양극단의 차원을 비판하게 만든다는 점을 우려한 데서 시작된다. 그는 “착한 건 싼 게 아니고 싼 건 다 착하지 않다”라고 말하며, “값싼 걸 착한 것으로 착각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른바 마케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하는 자본주의”의 패착은 전형적인 선과 악의 구도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싸구려를 착한 가격, 착한 가격 하다 보면” 진정한 소비와 노동의 가치를 잃을 수 있는데, 이는 ‘착한’의 대립과 모순으로 드러나게 된다. 어떤 가격이 상대적 평가 기준보다 높거나 낮을 수는 있으나 세상에 나쁜 가격은 없다. 시인은 노동의 가치가 ‘저렴함’과 결부되어 “착함의 값이 떨어져 버려질까 두”려운 우리 시대 정책의 현주소를 확인하며, 단어의 숨은 뜻을 읽어나간다. 세상의 움직임이 말과 마음의 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믿어보면서. (김보람 시인)
김보람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모든 날의 이튿날』, 『괜히 그린 얼굴』, 『이를테면 모르는 사람』, 연구서 『현대시조와 리듬』이 있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에 선정되었다. 21세기시조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김보람 시인의 〈시조시각〉13 _ 문무학의 「뜻밖의 낱말 · 10―착하다」 < 시조포커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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