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린 기자
6월 20일 오후 2시 30분 방배동 백석예술대 리사이트홀에 제11회 포엠포엠 라임라이트시낭송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엔 최금녀, 이화은, 문현미, 김추인, 이인원. 정영선. 황상순. 서영택. 이은화, 조승래, 김숙영, 석조운, 정경봉, 김제욱 외 시인들과 독자 60여 명이 참석했다. 빅노아 시인(《포엠포엠》 등단)의 사회로 한창옥 시인(포엠포엠 대표)의 환영 인사에 이어 허영자 선생님의 축사와 서영택<한유성문학상> 위원장의 격려사가 이어졌다.

《포엠포엠》은 시 전문지를 발행(vol.111)하며 시낭송회를 이어오고 있다. 10주년에는 기념 낭송집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시’MUST READ POEMs(mrp2)를 출간한 바 있는데, 한창옥 시인은 “1980년대에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시를 쓰고 매월 동숭동 오디오월드와 정동 예음홀에서 시낭송 공연을 했다”며, “그 시절의 낭만이 그리워 시작한 시낭송회가 어느덧 11년이 됐다”고 회고했다. 부산역에서 울산까지 특별열차를 운행하며 진행한 2002년 ‘기차여행 시낭송회’와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촛불 100개로 객석을 만들어 시민들과 밤새 시와 음악을 나눴던 무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허영자 시인은 축사를 통해 객석을 집중시켰다. “시인들께서 직접 자신의 작품을 낭송하시는 일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주는 감동과 영향은 매우 크리라 믿습니다.”라고 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유도했다.
참석한 시인들과 독자들은 유월의 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방배동 백석예술대에서 책자에 나온 낭송시를 한 편 한 편 읽으며 시에 나타난 정서에 흠뻑 젖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 시가 놓이고 시인과 독자가 어우러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장면이 연출됐다.
<낭송시 맛 보기>
나무의 기억법
문현미
수억만 년 동안 지구별과 함께
묵묵히 그리고 꼴똘히
헤아릴 수 없이 숱한 사람들
죽고, 죽임을 당하고, 사라지고
다가올 생명의 환희를 지켜보았을 뿐
하늘을 향해 등뼈 곧게 세우고
천 개 청록빛 손으로 엽서를 보낸다
저 속에 안개비 스미는 몇 밤
저 속에 눈보라 흩날리는 며칠
바람과 구름 노닐다간 흔적들
대지에 깊이 뿌리를 박고서
나무 아래 아이처럼 웃다가 울다가
한 움큼 추억을 안고 돌아간 사람들을
다정한 눈빛으로 기억한다
하늘하늘 흔들리며 멀리 번져 나가는
맑고 애틋한 그리운 이야기들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금빛으로 수놓은 천진난만을 떠올리며
그래도 나무는 끝내 말이 없다
-
부부
최금녀
우리는 공기를 다 마셔버렸다
건넬 말도 마셔버렸다
이런 균형은 역대급으로 안정적이다
서로 다른 프로그램으로 진행 중
새들이 까먹을 수 있을까
나는 해바라기 씨와 그 작은 부리들을 생각하고
그는 휘어진 등을 고추 세우고 붓글씨를 반복
만지기만해도 찢어질 듯 한 종이와 먹물 위에서
늙고 마른 손과 팔을 긴장시킨다
산비둘기 두어 번 울고 가면, 저녁나절이라는 신호
해바라기 씨껍질들이 싸락눈처럼, 희끗거리고
어디서 본 듯한 글씨의 모형들이, 신문지 위에 겹친다
우리는 역대급으로 평화롭다
생각에 잠긴다.
-
더 늙어서 만나자는 말
이화은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네
더 늙어서 만나자는 말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 없는데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네
시작도 끝도 없어야
정말 사랑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힘껏 늙어가는 중이네
시간의 흰 이마에
날마다 첫눈이 내리고
스무 살의 노인이 마침내 내게로 걸어오는데
이제 그만 늙어도 된다는 말
아무도 하지 않네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네
이제 그만 늙어도 된다는 말
아무도 하지 않네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네
-
지는 꽃
정영선
어스름 녘
여섯 시를 대기하는 종루의 북 앞에서
그는 정적을 모으고 있다
비가 내릴 듯
숲을 압도하는 고요
텅.
북소리는 몸을 관통하고
처마 너머로 갈 때
인간의 북소리가 천지를 아프게 때린다
비가 거세어진다
북소리
빗소리
우리는 비에 젖고 북소리에 젖는다
마지막 북채가 둥글게 활을 그리느라 공중에 머문
여음은 점점 소리의 꼬리, 꼬리로 가늘어지다
사라진다
천천히 돌아서는 검정 고무신
무엇이 속세를 속세로 규정했을까
세속의 강을 건넌 젊은 스님 뒷모습이
지는 꽃처럼 슬프다
-
빛과 그림자의 나무
―해미읍성을 거닐며
김제욱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잎사귀를 흔들며 서 있다.
그늘 아래 깊게 박힌 뿌리는 고요를 품고
희미한 숨결이 지나간 시간의 자취를 감싼다.
사람들은 나무 아래 멈춰 서서
기도하듯 고개를 숙인다.
누군가는 거친 표면에 시선을 내려
묻혀 있던 시간의 지문을 읽는다.
다른 이는 잊힌 질문을 떠올리며 속삭인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발소리가 끊겼을까.
흙과 시간의 경계에 서 있는 자리.
그 나무는 겹겹의 세월을 두르고 서 있다.
잎사귀는 바람에 나부끼며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가끔 그 아래에 멈춰 서서
햇살의 기원을 올려다본다.
발걸음을 멈추고
작은 돌을 흙 속에 감추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 말 없이 발끝을 내려다보는 사람도 있다.
나무는 잎사귀를 흔들며 묵묵히
휘어진 시간을 지탱한다.
그 흔들림은 침묵 속에서 무언의 대화를 남긴다.
사람들은 그 아래 서서
지난 시간을 함께 견딘다.
성긴 잎사귀 사이로 하늘이 조각나 흐른다.
나무 아래로 바람은 거침없이 드나들지만
온기는 끝내 머물지 못한다.
그늘에 든 이들은 제 숨소리에 놀라
발밑의 그림자를 밟으며 지나간다.
누군가 비틀린 가지 끝을 바라보다
마른 잎 하나를 흙 위에 떨구지만
그 자국마저 바람에 흩어진다.
어느 나무는 이미 쓰러졌다.
뿌리와 가지는 흙 위에 흩어져 있고
그 고요 속에서 작은 풀들이 자라난다.
사람들은 그 옆을 지나며
흙 속에 무언가를 심기도 하고,
다시 꺼내기도 한다.
누군가는 쓰러진 나무를 손끝으로 쓰다듬으며 말한다.
"끝이 아니야."
그러나 나무는 대답하지 않는다.
숲 가장자리, 바람 속에 줄기를 휘감은 둥근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자리에 묵묵히 서 있다.
빛과 그림자를 품은 채
그 자리에 머물며 시간이 스며든다.
흙 위에 한 얼굴이,
빛과 그림자가
흔적도 없이 머문다. 잠시.
11th 포엠포엠 라임라이트시낭송회 성료 < 현장+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11th 포엠포엠 라임라이트시낭송회 성료 - 미디어 시in
하린 기자 6월 20일 오후 2시 30분 방배동 백석예술대 리사이트홀에 제11회 포엠포엠 라임라이트시낭송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엔 최금녀, 이화은, 문현미, 김추인, 이인원. 정영선. 황상순. 서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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