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정 시인 _ 우거진 봄
우거진 봄 윤석정 …어둠이 어둠을 자궁이 자궁을 아이가 아이를 소리가 소리를 추억이 추억을 낳고 문명이 문명을 시대가 시대를 가난이 가난을 낳고 흙이 흙을 뿌리가 뿌리를 꽃이 꽃을 낳고… 저 봄이 계단에 누워 이 봄을 출산할 무렵, 천년만년 놓아둔 돌부처처럼 그녀가 앉아 있다 늙어가는 지팡이를 바구니 곁에 가로놓아 둔 채 그녀는 꾸벅꾸벅 그러나 고요하고 질긴 명상을 한다 바구니 속에는 얼굴이 얽은 칡뿌리가 지하생활에서 간과한 일광욕 삼매에 빠져있다 탄생이 비밀스런 태아들은 도처에서 자라나 그녀의 흙내를 맡으려 한다 문자와 숫자의 태아를 가진 적 없는 그녀가 쪼글쪼글해진 자궁으로 깊숙이 웅크린다 저 산에서 이 산으로 빠져나온 뿌리처럼 그녀는 층층이 너울진 넓적한 돌에 엉덩이를 묻고 오후의 태아를 마냥 보듬..
포토포엠
2024. 2. 16. 1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