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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정 시인 _ 우거진 봄

포토포엠

by 미디어시인 2024. 2. 1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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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봄

 

윤석정

 

어둠이 어둠을 자궁이 자궁을 아이가 아이를 소리가 소리를 추억이 추억을 낳고 문명이 문명을 시대가 시대를 가난이 가난을 낳고 흙이 흙을 뿌리가 뿌리를 꽃이 꽃을 낳고

 

저 봄이 계단에 누워 이 봄을 출산할 무렵, 천년만년 놓아둔 돌부처처럼 그녀가 앉아 있다 늙어가는 지팡이를 바구니 곁에 가로놓아 둔 채 그녀는 꾸벅꾸벅 그러나 고요하고 질긴 명상을 한다 바구니 속에는 얼굴이 얽은 칡뿌리가 지하생활에서 간과한 일광욕 삼매에 빠져있다 탄생이 비밀스런 태아들은 도처에서 자라나 그녀의 흙내를 맡으려 한다 문자와 숫자의 태아를 가진 적 없는 그녀가 쪼글쪼글해진 자궁으로 깊숙이 웅크린다

 

저 산에서 이 산으로 빠져나온 뿌리처럼 그녀는 층층이 너울진 넓적한 돌에 엉덩이를 묻고 오후의 태아를 마냥 보듬는다 지난한 명상이 옹알거리는 태아를 데리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저녁의 태아는 이들이 소란스러워 바구니 속에서 뿌리를 깨문다 태아는 뿌리에 담겨진 어둠을 빨아먹고 그녀 속으로 기어든다 그녀가 어둑해진 몸을 풀자 그녀의 넝쿨손이 홀쭉한 얼굴로 뻗어 나와서 검게 그을린 태아들이 그득한 바구니를 짊어진다 반질반질해진 넝쿨을 내밀며 돌계단을 살살 올라가는 저 우거진 봄

 

― 『누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않아도, 걷는사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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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봄 윤석정 …어둠이 어둠을 자궁이 자궁을 아이가 아이를 소리가 소리를 추억이 추억을 낳고 문명이 문명을 시대가 시대를 가난이 가난을 낳고 흙이 흙을 뿌리가 뿌리를 꽃이 꽃을 낳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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