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 시인의 〈어제 읽지 못한 시〉 5 _ 이영옥의 「눈사람」
눈사람 이영옥 당신의 뒷모습은 갈수록 아름다워서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편의점 앞에 반쯤 뭉개진 눈사람이 서 있다 털목도리도 모자도 되돌려주고 코도 입도 버리고 눈사람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순수 물질로 분해되기까지 우리는 비로 춤추다가 악취로 웅크렸다 지금은 찌그러진 지구만 한 눈물로 서 있다 눈사람이 사라져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눈사람이 섰던 곳을 피해 걷는 것 당신을 만들어 나를 부수는 사이 뭉쳤던 가루가 혼자의 가루로 쏟아졌던 사이 사람은 없어지고 사람이 서 있던 자리만 남았다 우리가 평생 흘린 눈물은 얼마나 텅 빈 자리인지 ― 『하루는 죽고 하루는 깨어난다』, 걷는사람, 2022. --------------- 뒤늦게 더듬어 생각해보면 뒷모습이 아름다운 건 사랑이 아니다. 다만 애써 만든 눈..
포엠포커스
2022. 12. 27.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