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 시인의 〈어제 읽지 못한 시〉 1 _ 박소란의 「벽」
벽 박소란 슬퍼 모로 누웠을 때 가만가만 등을 쓸어주는 손길이 있었다 벽, 하나의 벽이 있었다 언제부터 벽은 거기에 있었나 벽에 기대어 생각했다 벽의 아름다운 탄생에 대해 벽은 온화하고 벽은 진중하니까 벽은 꼭 벽이니까 슬픔을 멈추고 잠시 축배를 들었다 그때 벽에서 새어나온 비밀스러운 속삭임 쉿, 아침이 오고 있어 빛이 스며드는 베란다를 훔쳐보다 얄브스름한 커튼을 매만지다 그래 내일은 커튼을 바꾸자 보다 두껍고 견고한 것으로 벽 쪽으로 누워 잠을 청했다 불길한 꿈이 찾아들었다 벽이 무너져 엉엉 우는 꿈 누가 벽을 부수었나 대체 누가 놀라 눈을 떴을 때 아침이 왔다 벽은 색색의 이지러진 얼굴을 감추며 어디론가 황급히 달아나버리고 누가, 그 누가 부른 적 없는 사랑이 쳐들어왔다 ― 『한 사람의 닫힌 문』, ..
포엠포커스
2022. 10. 20. 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