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기자
제41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김석영 시인이 2023년 2월 24일(금) 제주도 조천에 위치한 독립책방인 ‘귤다방’에서 두 번째 시집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를 가지고 북토크 행사(사회 이석준)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시인이 고른 4편의 시를 먼저 읽고 시에 나타난 의미와 창작 방식을 알아보고 대화를 나누는 순서로 진행됐다.
김석영 시인이 직접 선택한 시는 <정물처럼 앉아>, <낮잠 속에서 꽃잎이 떠내려간다>, <광물>, <넌 진화할 거야> 4편이었다. 대부분 참가자들이 제주도민인 자리에서, 제주와 물과 죽음을 다룬 시들을 선택해서 모두 다 귀를 쫑긋 세웠다.
감귤밭 속의 독립책방 주인장 강선미 씨가 <정물처럼 앉아>를 낭송하면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시인은 애초에 시집 제목으로 생각했던 <정물처럼 앉아>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시집 제목이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로 바뀐 이유에 대해 설명을 했다. <정물처럼 앉아>는 움직임을 강조하는 반어적인 표현이면서도 정적인 느낌이 있었다면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는 정물과 동물의 양방향성과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잠재적인 가능성을 함축하는 제목이라 고심 끝에 생각해서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물처럼 앉아>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김석영 시인은 대표작 중 한 편인 <낮잠 속에서 꽃잎이 떠내려간다>를 직접 낭송했다. 시에 실린 리듬과 음조가 시인 그 자체라는 느낌을 전해줬다.
낮잠 속에서 꽃잎이 떠내려간다
김석영
죽음이 빠져 있는 사전을 본 적 있다
잠을 많이 자면 계속 졸리다
어딘가로 자꾸 쏟아지는 것처럼
액체처럼
계속해서 생겨나는 점의 세계
허물은 어디에 있나
내가 들어가야 할 곳에
지우개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한 사람
얼룩으로 걸어 나가고
구겨진 기억대로
서서히 접히고 서서히 펴지는 종이의 모양
*
장미는 여러 겹의 불면증으로 감싸여 있다
잠을 다 썼으니까
불가능할 것 같던 낮과
가능할 것 같던 밤이 화투 패처럼 섞여 있는
한 잎씩 떨어뜨리며
빚을 갚듯 잠을 끌어다 쓴다
빌리는 것만으로도 꿈이 생긴다
*
처음부터 내 옆에 앉아
종이꽃을 만들던 사람
잘 접으려면
접힐 방향으로 미리 접어야 했다
직선으로
반듯하게 접힌
미로를 따라가면
한 번쯤 와 본 곳 같아
종이가 닫히기 전에
얼마쯤 누워 있었나
꼬깃꼬깃한
무릎을 폈을 때
책 속에서 오래전 잃어버린 개를 발견한다
개는 납작하게 끼워져 있다
구겨진 개의 털을 하나하나 펴 주었더니 목줄을 물고 온다
손금은
오래 목줄을 쥐었던 자국
개가 나를 끌고 산책 간다
내가 얼마나 늙어 버린 줄도 모르고
―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 민음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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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의 낭송이 다 끝난 후 김석영 시인은 사회자와 함께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회자: 시인님의 문학관이란? 시란 무엇일까요?
김석영 시인: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있고, 설명할 수 없는 게 있는데 이 ‘설명할 수 없음’이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실패의 말이기 때문에 우리가 끝내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해해 보려는 몸짓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시인님에게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나온 ‘돌’이란 무엇일까요?
김석영 시인: 저에게 ‘돌’은 가능성을 함축하는 사물 같습니다. 저란 사람은 ‘물결’처럼 가볍고 흔들리는 편인데 그래서 단단한 돌을 좋아하고 또 매혹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자: 첫 번째 시집인 『밤의 영향권』과 이번 시집인 『돌을 쥐려는 사람에게』을 놓고 볼 때 변화된 모습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김석영 시인: 첫 시집의 서시가 ‘입안에 돌을 삼키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마지막 시는 ‘싱크홀이 파여 있는 것’으로 끝나는데요. 작은 돌 하나가 싱크홀처럼 거대해질 수도 있는 밤의 역설을 드러내고 싶었다면,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돌에 대해 못다 한 말들이 남아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의 돌이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 나중에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 밖에 김석영 시인은 시를 쓰는 자신을 규정하는 단어를 선택했다. 자신을 ‘물결’이라고 표현했는데, 끊임없이 자의식의 흐름을 비유한 말 같았다. 그러면서 참가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은 사물을 빗대어서 표현해보라고 제안했다. 한 참가자가 ‘도그지어’라고 말하자 그 속에서도 시어가 나온다며 즉석에서 “나는 누군가의 접힌 자국이었다.”라는 시구를 지어 반짝이는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이날 독자들은 김석영 시인의 접힌 자국이 되고, 김석영 시인은 독자들의 접힌 자국이 되면서 함께 그 자리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감귤밭의 밤이 저물면서 북토크 행사장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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