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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고양이와 걷자』가 걷는사람 시인선으로 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4. 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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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소멸에 저항하는 시()편들

 

 

하린 기자

 

하기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고양이와 걷자걷는사람출판사에서 나왔다. 5.18문학상, 불꽃문학상, 작가의눈 작품상, 시인뉴스 포엠 시인상 등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하기정 시인은 201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로 등단한 후, 첫 시집밤의 귀 낮의 입술에서 신기하고 매력적인 질문이 그득하다는 문태준 시인과 잘 꿰어진 말들의 염주라는 이하석 시인의 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고양이와 걷자는 첫 시집 이후로 5년만에 낸 시집이다. 하기정 시인의 시집 해설을 쓴 김지윤 평론가는 하기정의 시는연결과 연루, 연쇄를 말하는 시편들로 낯설음과 낯익음이 뒤섞인 하기정 특유의 시 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매혹적으로 농익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며 하기정 시의 시는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생기는 마찰과 겹쳐짐이 드러난다. 그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만남이며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서서히 배어드는 일이다.”라며 하기정 시인의 시 세계를 천착한다. “시인은 한 사람이 내적 아픔과 병든 세상의 고통이 공명하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세상의 병을 같이 앓고 치유되는 세상을 꿈꾸며 시인은 세상의 환부를 직시하려 한다. 그리고 아직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 소리를 찾기 위해 내부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시집의 화자들에게 그것은 사랑을 찾는 행위이다. 이것이 시인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다.”라며 한층 깊어지고 섬세한 시인의 시 세계와 매력적인 언어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시편들로 가득 차 있다는 평을 남겼다.

 

하기정 시인의 신간고양이와 걷자를 통해 새롭고 신선한 언어의 감각을 맛보며 시의 언어들이 중첩의 다중적 의미 안에서 어디까지 확장하는지 독자들이 그 세계를 가늠해보는 것도 좋겠다. 나른하게 다가오는 봄과 함께.

 

 

 

<시집 속 시 맛보기>

 

뒤로 나아가는

 

하기정

 

나는, 물 같은 시를 쓰고 있는가, 물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가, 여름을 이루는 단단한 순간들을 나열하는 사람인가, 서열을 가르는 사람인가, 늪에 빠진 왼발을 위해 기꺼이 오른발마저 빠지는가, 아름다운 것을 가리킬 줄 아는 여섯 번째 손가락이 있는가, 그것을 새길 수 있는 뾰족함을 가지고 있는가, 모서리를 밟는 발가락이 있는가, 문 워크를 할 줄 아 는가, 한 발 나갔다가 두 발 물러서는 사랑이 있는가, 터진 주머니 속에서 굴러 나온 동전을 줍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가, 굴러가서 도착할 곳이 있는가, 꿈에 꽃을 보는가, 사과를 깎으면서 뼈를 깎을 수 있는 있는가, 무를 자르면서 두부를 생각하는가, 끌고 가는 꼬리를 자를 수 있는가, 궁핍을 위한 궁리를 하는가, 불에 그을린 냄비처럼 생활이 묻어 있는가, 뒤집힌 양말처럼 다시 뒤집을 혁명이 있는가, 나는, 시를 쓰면서, 귀와 눈과 코와 입술이 뚜렷한 입체적 사랑과 구체적 결말을 예견하는가, 이 모든 눈송이를 뭉쳐 질문처럼 던질 수 있는가, 나는

—『고양이와 걷자,걷는사람, 2023.

 

 

 

고양이와 걷자

 

하기정

 

감각의 조율사가 되어 보기로 하자

밤의 고양이처럼

지붕 위를 사뿐히 걸으며

한 발을 들면 다음 발을 내려놓을 것

고양이와 걷자

 

달빛의 하얀 가루가 먼지의 빛처럼 쌓이네

모처럼, 이라는 말을 앞에 잠시 가져다 놓을게

정해진 용도 없이 양말을 손에 신고

발밑에 검은 별들의 배경을 밟고

우리는 모처럼

고양이와 걷자

 

영역을 벗어나면 동그랗게 눈을 뜨고

한쪽 다리를 들어 모험처럼,

오줌을 누자

불을 피우고 연기를 뿜으며

조난자처럼 밤의 고양이처럼

수염을 뾰족하게 세우고

 

고양이와 걷자

느슨해진 밤의 건반을

딛자 딛자 딛자

—『고양이와 걷자,걷는사람, 2023.

 

 

사월

 

하기정

 

사월에는 누가 자꾸 아프다는 말이 들려오고

 

환부를 들추다 화들짝 놀라 떨어지는

봄꽃의 파리한 얼굴처럼

당신은 아픈 곳을 숨기려 하네

 

아름다운 사람은 물오른 나무의 수액을 받아 오네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네

 

살 일보다

죽을 일을 걱정했던 당신

꽃이 피는 만큼 지는 일을 괴로워하는 것은

당신의 오랜 습관이 되었네

 

징검다리처럼 이 환부를 딛고 건너가야 하리

유리창 너머의 일을

모두 투명하다고 말할 수는 없네

바다의 일을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네

 

발톱처럼 자라나는 상처를 툭툭 잘라

바다에 묻고 돌아오는 저녁이었다

—『고양이와 걷자,걷는사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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