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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 네 번째 시조집 『맹물 같고 맨밥 같은』 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4. 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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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의 시선으로 바라본 존재의 떨림과 변전

 

 

정지윤 기자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명숙 시인의 시조집 맹물 같고 맨밥 같은이 열린시학정형시집 175로 출간되었다. 맹물 같고 맨밥 같은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최 ‘2022년 우수출판콘텐츠에 선정된 작품집이다.

 

박명숙 시인은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하였으며 중앙시조대상,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김상옥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그늘의 문장』 『어머니와 어머니가』 『은빛 소나기, 시선집 찔레꽃 수제비가 있다.

 

풀잎 끝에 이슬이 곤두서는 문장의 아침,/ 그 첫 서슬에 기대어”(시인의 말) 펴낸 이 시집 은 어느 한 편도 허투루 읽고 넘어갈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조밀하다. 해설을 쓴 임채성 시인은 새로움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탐색하는 이가 박명숙 시인이다. 물활론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과 사물의 관계를 구축하는 그의 시편들은 미학적인 완결성 또한 매우 돌올하다. 그의 시조는 언어와 사유가 한 곳에만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끊임없이 확산한다. 수직과 수평, 직선과 곡선, 상상과 실재, 현상과 이면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시의 외연을 넓혀간다. 그의 언어는 수풀 사이를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멧새 떼의 날갯짓처럼 활달하고, 사유는 늦가을 낙엽 쌓인 공원을 홀로 산책하는 칸트의 발걸음처럼 진중하다.” 라고 평하며 관념의 감각화와 그 이미지의 변주에 주목했다.

 

신필영 시인은 작의作意, 혹은 작전作戰은 언제나 감쪽같다. 눈치 챌 일도 없이 그가 들이대는 고성능 투시카메라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된다. 비로소 읽는 이도 심안이 열린다. 아무렇지 않게 보던 사물들의 앞과 뒤, 안과 밖, 멀리 가까이가 속속들이 특별한 파노라마로 보이게 하는 그의 마법에 덜미가 잡힌다. 그믐달이 흘러들고 나가는 사이의 짦은 시간에 기대앉은 존재, 그리고 그가 전하는 불가사의한 말씀의 손짓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무량한 사유의 공간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반가사유). 그런가하면 서해의 낙조 앞에서 금박댕기 물려 줄 엄마를 기다리는 종종머리 소녀를 만나기도 한다(서해에서 기다릴게요). 결국 그의 시를 읽는 이유는 유한한 음역을 초월하여 넘나드는 노래의 천변만화 속에서, 독자의 미적 욕구가 소스라치도록 밀려드는 그 어떤 엑스터시에 빠져들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평했다.

 

신철규 시인은 박명숙의 시조에는 고통이 담겨 있다. 고통을 담고 있는 시는 오래 가고 멀리 간다. 다시 말해, 지속성과 파급력이 있다. 편하게 쓴 시는 자신과 가까운 언저리에 머무른다. 더 뻗어나갈 자리가 없다. 고통이 담긴 시는 더 깊은 상처로 내려가고 더 오래 상처의 자리에 머무른다.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는 시,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어주는 시. 그러면서도 사물과 현상의 단면을 예각적으로 포착한 섬세한 이미지가 적확한 언명으로 표출되는 에피그램들은 붕괴된 마음과 균열된 세계를 일순간 구제해낸다. 박명숙의 시조는 우리 시대 시조의 존재 증명이다.”라고 평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반가사유

 

 

박명숙

 

 

 

입꼬리만큼 마음의 꼬리를 끌어올리고

 

사유는 반만 접어 무릎 위로 올린다

 

그믐을 흘러들어온 달빛이 정박 중이다

 

 

떠날 듯 머무를 듯 잠길 듯 떠오를 듯

 

뺨에 물린 손가락으로 고요를 짚는 동안

 

눈초리 휘어진 달빛이 그믐을 빠져나간다

 

— 『맹물 같고 맨밥 같은, 고요아침,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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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박명숙

 

 

성냥불 타들어가듯 물빛 홀로 꼬부라지는데

정강이 일으켜 세우고 적벽이 건너온다

징검돌 하나씩 버리면서 저벅저벅 건너온다

 

어둠살 들이치는 물결과 물결 사이로

금천강 저녁답 실핏줄을 터뜨리며

적벽이 물 건너온다 들소처럼 건너온다

 

해으름 물소리는 솔기마다 굵어지는데

성미 급한 어둠을 한 걸음씩 들어올리며

핏물 밴 적벽 한 채가 철벅철벅 건너온다

 

— 『맹물 같고 맨밥 같은, 고요아침,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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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숲

 

 

박명숙

 

 

유월의 첫 강의는 밤꽃에 관한 서사

전문적인 향기를 허공이 베낄 동안

빠르게 꽃술을 늘이며 여름이 달려든다

 

서두부터 어지러운 꽃들의 속기록이

부우연 달변으로 뒤덮인 첫 더위가

이마를 들이받으며 숲길을 막아선다

 

고약하고 숨 막혀라 햇살도 챙챙한 날

보리수염처럼 쇠어가는 자욱한 책장마다

능선을 회오리치는 밤꽃들이 소란하다

 

— 『맹물 같고 맨밥 같은, 고요아침,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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