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 기자
외가는 무당이 줄줄이 나는 집안이고, 친가는 좌파 연좌제의 붉은 호적 집안이어서, 시를 안 쓰면 살 수가 없었다는 석민재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그래, 라일락』을 시인의일요일에서 출간했다. 엄마 말도 잘 듣지 않던 고집불통의 시인은 스스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시의 말만 잘 들어요. 시를 읽고 쓰면서 비로소 사람이 되었지요” 라고.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 하동에 살고 있는 시인은, 오는 3월 <양보책방>(하동군 양보면)을 연다. 지난가을과 겨울 내내 땅을 다지고 그 위에 책방을 올렸다. 그는 마흔일곱 살이던 작년에 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늦깎이 학생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과 생활을 문학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는 투지와 행보가 만만치 않다.
첫 시집이 세상에 대한 소심한 반란이었다면 이번 시집은 한층 격렬하고 깊어진 느낌으로 다가온다. 죽음에 대한 선명한 자의식은 “죽음은 변화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유를 낳게 하고, 가족 관계에 대한 서늘한 응시는 “부모를 고를 수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라는 시행을 만들어낸다.
모나고 투박한 세상살이 혹은 공고한 혈연 공동체의 우악스러운 숙명으로부터 벗어 나려는 시인은 오히려 물의 유연함과 같은 사유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집 곳곳에서는, 어른에 대한 불신과 불만, 분노와 항의로 어른들의 가증스러운 권위에 당당하게 도전한다. 마치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나오는 오스카 마체라트처럼.
시인의 유연함과 당당함은 부처와 같이 자유자재한 노마드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자기를 넘어선 사람인 초인은 한곳에 정주하며 안락을 도모하지 않는다. “한곳에 오래 있으면 발이 간질거립니다 무리에 어울리는 요령이 없는 내게 사건을 순리대로 적는 습관을 기르라고 합니다”(「화심」)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어떤 구애됨이 없이 묵묵히 시 자체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번 시집을 읽다 보면, 단순한 자기 연민이나 자기반성에 그치지 않고 시를 통해 자신을 세우려 안간힘을 쓰는 시인의 모습이 환하게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시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시를 읽는 나의 모습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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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강둑에 앉아 낚시하다가
뭐라도 걸리면
우쭐해서
식구들에게 자랑하며 나눠 먹고 자랐는데
물고기를 실컷 잡아놓고
풀어주는 사람이
친구 하자고 다가오면
영 거슬린다 낚시를 재미로 하는 것이
— 「모란」 부분
딸 셋 중에
저, 상주 중에
누가 가장 크게 울까요
장녀도 아니고
차녀도 아니고
막내도 아니고
가장 가난한 딸이 젤로 크게 웁니다
— 「이월」 전문
무명으로 지은 베개에 머리 얹고 자면
아픈 데가 없어진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흩어진 후에
울고 싶은 대로 울었다
내가
입 다물면
돌이 소리 지를 것 같았다
— 「울고 싶은 대로 울었다」 부분
부모를 고를 수 없다는 건 참 슬픈 일
날 때부터 엉덩이에 무게중심을 잡은
뚝심과
균형은 다시 파괴되어야 한다
옆 구르기를 하고 싶다든가
근성은
피를 거꾸로 보내기
나는 나를 뒤집어야 살 수 있다
— 「오뚝이에게」 부분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출신 석민재 시인 두 번째 시집 『그래, 라일락』 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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