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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호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문학동네 시인선으로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3. 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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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젊은 시인의 특별한 시선(視線)

 

 

하린 기자

 

육호수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를 문학동네시인선으로 발간했다.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감각과 사유의 절묘하고도 기묘한 균형감”(시인 김언)을 갖추었다는 호평을 받으며 첫 시집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아침달)2018년에 펴낸 바가 있다. 등단 후 2년 만에 첫 시집을, 다시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묶었으니, 첫 시집에서의 특장이 두 번째 시집에서 깊이로 나아갔을 확률이 높다.

첫 시집을 통해 빛과 꿈, , 바다나 모래성과 같이 섬세하게 반짝이는 감각과 이미지들로 소년기의 상처를 되짚고 현실과 천국의 풍경을 겹쳐 보였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한층 더 단단해진 사유와 언어에 대한 감각을 선보인다.

 

그중에서도 꿈에 대한 시선은 매우 특별하다. “너른 꿈의 가장자리로 들어가는 입구는 더욱 좁아서 꿈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화자는 여러 번 내쳐지지만, 그럼에도 꿈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다나에)한 채 꿈이 갖는 다층적인 의미와 상징적인 의미를 경험하고 찾아내어 현실 언어로 공감대 있게 펼친다.

 

화자가 바라는, ‘영원’ ‘소년’ ‘천사로 표상되는 모든 것이 꿈속에 있다. “쏟아지는 빛에 놀라 깨어나면 눈앞에 여러 겹의 어둠”(다나에)이 펼쳐져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무수한 유령들을/ 허물로 남겨두고/ 밤의 아름다움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희망의 내용 없음) 곳이 꿈이다. “방의 어둠을 해치지 않고”(망명)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 화자의 상태라면, “누군가 방의 입구에 불을 지른다면/ 어디로도 나갈 수 없다는 생각”(다나에)을 화자가 갖고 있다면 꿈은 단순히 암시성을 갖는 코드를 뛰어넘는다.

 

육호수 시인은 미니 인터뷰(문학동네가 제공)에서 시인님의 시세계에서 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란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게 된다. “나는 내게 진실하기 어렵고, 세상에 진실하기 어려워요. 반대로 누군가에게, 세계에게 진실을 바라기도 참 어렵죠. 영혼과 진실은 공기에 취약하잖아요. 내놓으면 갈변하죠. 자기의 영혼과 진심을 세상에 드러내고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지만 악몽만은 악몽의 방식으로 내게 진실해요.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후회하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지 아주 투명하게 펼쳐 보여주지요. 악몽 안에는 이 세계의 것은 아니지만 시공간이 있고 감각이 있고 이야기와 감정이 있죠. 이 세계와 단절된 세계이면서도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요. 그런 면에서 악몽과 시는 참 닮았어요. 악몽에서 깨기 직전의 순간과 시의 마지막 문장도 비슷하고요. 저는 악몽에서 깨고 난 직후의 한밤중에 시가 제일 잘 써져요. 악몽을 한바탕 겪으며 세상에서의 내가 완전히 무장해제되고 무방비의 영혼이 노출되는 시간이니까요. 그래서 원고 마감에 쫓길 때는 악몽과의 독대를 바라며 잠에 들기도 해요.”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육호수는 악몽을 시적 모티브와 통과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그가 갖는 특별한 꿈의 시적 발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시집 속 시 맛보기>

 

 

다나에

 

 

육호수

 

 

면벽 중에 벽을 잃었을 뿐이라고

손톱을 세워 벽 위에 썼다

 

어느 궁전 아래 밀봉된 지하감옥처럼

방 안엔 빛의 소문만이 떠다녔다

 

누군가 방의 입구에 불을 지른다면

어디로도 나갈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여러 번 화염에 휩싸인 채 깨어나야 했다

 

너른 꿈의 좁은 입구에서 여러 번 내쳐졌다

이 방에서 죽어 이 방의 거름이 된 귀신들이

피사체 위로 떨어져 내리는 사진가의 그림자처럼

늘 곁에 있었다

 

쏟아지는 빛에 놀라 깨어났으나

여러 겹의 어둠 속이었다

그 빛이 어디에서 왔을지 알 수 없어

다시 벽을 잃었구나, 생각했다

 

어떤 꿈에선 사랑이 많은 사람과 만났다

그와 살아서 가고 싶은 곳보다

죽어서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았다

우물 앞에 엎드려 거꾸로 숫자를 세는 동안

물 위에 비친 우리는 묵묵히 우리를 견디어주었다

 

어떤 꿈에선 걸음이 남아

꿈의 둘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떤 방향으로 누웠는지

누구의 곁에서 잠에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먼 곳에 꼬리를 물린 바람에게 물어도

깊은 어둠을 헤집는 나무에게 물어도 알지 못했다

 

당연한 마음들이 유일한 마음이 될 때까지

그곳을 나오지 못했다

 

이빨이 몽땅 빠지는 꿈을 꾸고 난 다음에는

이빨이 아주 많아 좋았다

아직 백 년도 살지 못해

실망스럽기도 했다

 

—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문학동네, 2023.

 

 

장마

 

 

육호수

 

 

꿈 바깥의 안부를 전하느라

거듭 옅어지던 꿈의 개울가에서

 

서로의 귀에 귀를 포개었지

서로가 기르는 침묵의

둘레가 되어주려고

 

언제까지?

언제까지. 언제가 사라질 때까지

 

사막을 보아 사막을 잃고

바다에서야 바다를 지웠듯

귀로 마주인 서로일 때에

시간보다 기억이 먼저 가 고여 있었지

서로의 묵음이었지

 

기억을 믿어?

믿고서 기억의 바깥을 지내?

 

물에 잠긴 징검다리를 건너

여름에서 빗겨나 그때

귓속에 담아둔 소리를 마저 듣지

여기 비가 지나고

비 소식이 지나고

. 소리가 지났어

 

이제 나의 기억 속엔 아무 기억 없고

기억의 바깥에선 어디도 갈 수 없는

기억을 기워 몸을 가리지

 

밤의 개울가엔 검은 물이 흘렀지

검은 물 위로 검은 하늘이 흘렀어

 

있잖아 나

이곳에 먼저 도착한 말들을

알아듣지 못해

 

바람결 따라 목을 젖힌 나무들

날개. 소리들

—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문학동네, 2023.

 

 

 

희망의 내용 없음

 

 

육호수

 

 

우리가 우리에게

발각되지 않는 곳으로 가자

 

더 많은 공기를 정화할

더 많은 허파가 필요한

오래된 세계에서

 

더 많은 빙하를 녹일 더 많은 체온이

더 많은 어둠을 흡착할 더 많은 악몽이

더 많은 멸종을 지켜봐줄 더 많은 마음이 필요한

오래된 세계에서

 

사람인 채로 더 이상

망가지고 싶지 않아

 

적막 속에 찾아오는 수치심은 아름다웠음

몸을 떠난 살은 몸보다 먼저 썩었음

희망의 내용 없음

 

여러 겹의 몸을

몸 위에 겹쳐지는 무수한 유령들을

허물로 남겨두고

밤의 아름다움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자

푸른 하늘 은하수 끝나지 않는 손장난

밤이 기어이 밤을 어기는 곳으로

 

우리라고 부를 이 없음

우주선 없음

다른 세계 없음

희망의 내용 없음

 

내가 너에게 발각되지 않는 곳에서

울지 않고 기다릴게

거울에 갇힌 구름은 갈 수 없는 곳

어린 신의 어항 속

천사의 아가미를 달고

면벽의 안식 속에 감금되어

죽음과의 문답으로부터 소외되어

 

나의 굴레만을 나의 것으로

소유자 없는 나의 소유로 여기며

기다리는 이 없는 기다란

기다림

무색무취 수신자 없는 기도를

잇고 있을게

 

오래된 세계에서

지나치게 외로워서

지나치게 정직했음

영원에 진 빚 없음

 

—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문학동네, 2023.

 

 

육호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문학동네 시인선으로 발간 < 신간+ < 뉴스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육호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 문학동네 시인선으로 발간 - 미

하종기 기자 육호수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영원 금지 소년 금지 천사 금지』를 문학동네시인선으로 발간했다.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감각과 사유의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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