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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설정원』, 시인의일요일 시인선으로 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4. 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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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대한 특별한 은유적 사유

 

 

 

하린 기자

 

2005시와사상으로 등단한 김예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설정원가 시인의 일요일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그의 시는 첫 시집부터 세 번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공간에 대한 관찰과 집착을 놓치지 않는다. 두 번째 시집에서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을 따라 걸으며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나머지 풍경을 낯선 언어로 그려 보였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장소의 부재를 상징하는 가설공원에서 실감하는, 위태로운 삶의 난해와 난감을 온몸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집의 제목인 가설정원을 지극히 단순하게 풀어내자면, ‘임시로 설치한 꽃밭이다. 이때 가설이 갖는 임시적 속성을 바탕으로 시인은 어떤 문제를 예측하는 진술이자 변수로서 우리 삶의 진실을 추정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채광창」 「새들이 짓는 집」 「미지의 땅」 「100층 옥탑방의 작품들에서 나온 이 그렇다. 일반적으로 으로 은유되는 안식처는 존재의 자기 증명을 가능케 하는 장소지만, 김예강 시인에게 은 부재의 사실을 상기시키며 좌절의 고통만을 가중시키는 공간일 뿐이다. 오히려 존재의 결여를 부각시키는 은유로서 은 존재한다. 따라서 시인에게 은 불완전한 주체의 타자성을 감각하는 곳이면서 이를 돌파할 방안으로 구축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케 하는 공간이다.

 

시인에게 장소는 인간이 물리적 기반 위에 체험으로써 역사를 뿌리내리는 곳이자 오감(五感)으로 체득되는 공간이다. 우리의 총체적 삶의 현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소가 정서적 공간으로 확정되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재마저 위태로워진다.

모든 존재는 안락한 삶의 장소를 원하듯이, 시인은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무엇이 될 가능성을 지닌 을 원한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김예강 시인은 벼랑과 국경의 경계를 통해 불안정한 주체를 새롭게 인식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위무의 기능으로 시를 써내고 있다.

 

존재로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총체적으로 삶의 진실에 닿기 위한 노력이 김예강 시인의 시쓰기 목적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임시의 미완적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소망하는 동시에 지금의 불행한 현실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준다. 안주할 곳을 잃고 떠도는 자의 비애, 상실을 내면화한 존재의 위태로움을 김예강은 시 쓰기로써 극복하려고 한다.

현실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무엇이 될 가능성을 지닌 공간. 그런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적 체험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시집은 의미 있게 다가갈 것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새들이 짓는 집

 

김예강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은신처라며

우듬지에 새집이 있다

 

벼랑이고

국경이겠구나

 

잎사귀로 가려지는 집이

집이라며

가슴팍 털을 뽑고

지푸라기 나무꼬챙이

집이 있다

 

너에게 나에게

우리는

입속에다 먹이를 물어다 넣어 주는

피의 시간을 지나

이소離巢의 순간은

얼마나 환했을까

그 빛은 집을 다 태웠구나

 

바람을 몸에 묻히고

바람의 속도를

배우려고

바람의 냄새를 새들이 맡는다

 

바람이 사는 길에서

새는 잔다

 

다시 집은 없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우듬지에 새집이 있다.

 

나무는

우듬지에 훈장을 달고

흔들린다

 

― 『가설정원, 시인의 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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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창

 

김예강

 

구두를 벗어 말린다

생은 여기까지라던 12

 

기둥 없이 떠 있는 방

너는 매일 건축을 생각했다

열어 둔 서랍인 듯

햇빛 드는 집이 건축된다고

너는 말했다

야트막한 언덕 집은

강의 서랍처럼

입구에 새가 와서 앉는다

 

지상의 언덕에서 자꾸 꽃이 핀다

12개의 채광창이 생화처럼 피는

일 년은 따스할 것이다

빛의 속기를 누가 읽을 수 있나

흰 수염을 털며 총알을 장전하던 햇빛

오래 달려온 햇빛

 

이마와 눈이 다 늙은 채

방아쇠를 당긴다

우리는 폐허에서 또 폐허가 되어

모든 것이 고요해진다

 

텅 빈 집의 바닥에 당신이 앉는다

명중되기까지 몇 번이나 생은

몸을 바꾸는가

집은 미완인 채 우리를 찾는다

당신이 돌아온다 우리를 찾는다

 

― 『가설정원, 시인의 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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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김예강

 

한 페이지를 열흘째 보고 있다

 

오빠는 우산을 펼쳐 든 캐릭터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나는 버스를 기다린다

 

지금 난 슬픔입니다.

틀지도 않은 노래가 들린다.

 

펼쳐 든 우산이 시커먼 구름 덩이로 변해 있다

 

나는 음악을 틀고 버스를 기다린다

아무도 춤추지 않는 거리에서

노래가 들린다

 

오빠가 비 내리는 나무를

머리에 이고 서 있다 언제 이런 캐릭터가 되었을까

 

얼굴에는 눈이 없는 직사각형 얼굴이

입만 그려진 채로

얼굴보다 큰 비가 내려서 길어지는 얼굴

숨길 수 없는 눈을 어디다 두었을까

그래서 너무 많은 눈들이 유리창에 붙어 있는 것일까

 

비가 거리의

한 모서리를 접어 눌린다

한 페이지를 구긴다

 

딱딱한 침대 속에서

 

― 『가설정원, 시인의 일요일,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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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설정원』, 시인의일요일 시인선으로 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200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한 김예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설정원』가 시인의 일요일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그의 시는 첫 시집부터 세 번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공간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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