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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詩歷 60년, 김종해 시인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4. 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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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원숙한 통찰과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정이 갖는 함축미

 

 

 

하린 기자

 

 

삶과 존재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함께 따스하고 서정적인 시편을 발표해왔던 한국 시단의 원로 김종해 시인의 새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가 문학세계사에서 출간되었다.

 

올해로 시력詩歷 60년이 된 김종해 시인의 새 시집을 펼치면 60년이라는 시력을 관통하는 내공과 무게가 느껴진다. 삶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정으로 가득한 김종해 시인의 시는 정갈하고 함축된 언어로 삶과 자연의 섭리를 들려주고 있다. 김종해 시인의 이번 시집은 아름다운 서정시를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줄 뿐만 아니라, 청정한 이미지와 짧고 긴장된 함축미의 진수를 보여준다.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죽음과 죽음의 임박과 죽은 이들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일견 평이해 보이는 듯한 언술들로 구성된, 일상의 평범한 일들을 시에 끌어들이는 듯한, 무신경을 가장한 시들이,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기운을 내장하고 있다. 특히, 죽은 이들 그것도 그냥 일가 사람들, 지인들은 아니고, 문학사 속에서 이름을 접할 수 있는 시인들의 이름들이 발견되는데, 김광림(외출), 최하림(섬에서 최하림 시인을 만났다), 이어령(봄이여 무심하구나이어령 선생님을 그리며, 알람을 껐다), 박목월(따뜻한 지폐), 조지훈, 박남수(한 마리의 새, 이민을 가다) 등에 대한 시적 발화는 감동의 결을 동반한다.

 

김종해 시인은 이전의 작품에서 서울의 질병적 상태에 대한 화자의 경악에 가까운 환멸을 표현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신적 충격을 딛고 구원에 다다르고자 하는 완강한 의지 또한 표현한 적 있다. 김종해 시인이 어둡고 추운 서울의 현실에서 길을 찾아 뜨겁게 살아가던 시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서울의 봄날은 아직도 캄캄하다.’(서울이 캄캄하다) 하지만 객관적인 현실 그 자체란 없으며 그것은 언제나 그것을 대하는 사람에 의해 해석되고 이해된 어떤 것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집을 통해서 보는 김종해 시인의 현실은 이제 연행되는 지식인, 학생과 검열로 얼룩진 그런 것은 아니다. ‘서민 대중의 삶은 그의 심중 깊은 곳에 아직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겠지만, 그는 이제 그런 것을 고통스러워하며 대담과 논쟁과 질문의 주제로 올리는 대신 그런 어둠, 고통을 내장한 세계에 자신이 찾아왔고 이제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응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라는 언술은 깨달음,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 삶의 일상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 간단없이 찾아오는 떠난 이들의 기억, 노쇠해 가면서 외롭게 되는 것, 피붙이들이 주는 작은 기쁨들, 이런 것들 속에서 삶이란 무엇인가를, ‘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무엇을 생각하고 노래해야 하는가를, 편안해지고 순치된 것 같은 포즈 아래, 그러나 여전히 예민함을 잃지 않는 감각으로 묻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 등단 60년에 이른 시인 김종해의 시에 대하여 문학계의 원로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문학세계사 제공) 읽고 나면 김종해 시가 갖는 특징과 매력을 순식간에 느낄 수 있다.

 

김종해의 시집은 한 마디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시켜 준다. 사람들은 왜 시를 읽을까. 나는 종종 이 문제를 생각해 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아무리 그 내용이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시를 읽는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시라면 읽지 않는다. 어떤 시가 어떻게 즐거움을 주는가를 따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산문이나 그 밖의 사회과학이 주는 즐거움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김종해의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넉넉하고 따뜻하다.”(신경림 시인, 예술원 회원)

 

시의 산문화가 두드러지고 절제 없는 의식의 넘나듦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이 보이는 작금의 추세 속에서 과장과 요설 없는 시인의 세계는 고유의 간곡함으로 부가적 의미를 얻게 된다. 젊음의 노도질풍기와 중년의 신산함을 지나 노년의 시인은 이제 평정과 평온의 심경에 이른다. 세상 이치에 대한 화해와 거기서 유래한 인간 긍정과 세계 긍정이 성취한 정신의 경지다. 봄꿈을 기다리는 동안 행복할 수 있는 심경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것은 시인의 평생 경험이 안겨준 모색과 태도 형성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하여 김종해의 시편들은 은은하고 탈속한 삶에 대한 송가가 되어주고 있다.”(유종호 문학평론가, 예술원 회원)

 

김종해 시인의 시집에는 김종해 시인의 등단 60년간의 시력이 편안하게 숨 쉬고 있다. 삶의 산전수전뿐만 아니라 시의 산전수전도 다 겪은 노시인은 편안하고 자유롭고 오히려 천진해졌다. 시인은 이제 높은 뜻을 만들려고 긴장하지 않으며, 멋진 기교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새로운 시의 비경을 찾아 헤매지도 않는다. 등단 60년간의 시력은 시인으로 하여금 일상의 느낌과 생각이 그대로 시가 되게 하였고, 시와 삶이 하나가 되게 하였다. ‘나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고 중광 스님이 말한 바 있지만, 김종해 시인이야말로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도 시가 된다고 해도 될 것 같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이남호 문학평론가, 고려대학교 교수)

 

김종해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그전에 출간했던 시집들에서조차 감지하기 어려웠던 무언가 색다른 것이 있다. 시어가 한층 더 평이해졌고, 시적 진술도 형식의 구속에서도 한층 더 자유로워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적 소재도 평범한 사람들과 사물들 및 그것들이 존재하는 낮고도 낮은 세상의 체취가 한층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바뀌었고, 또한 다양해졌다. 다시 말해, 그동안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시인의 다원적, 다층적인 눈길이 전보다 한층 더 낮고 낮은 질박한 세상의 이곳저곳을 향하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장경렬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모두가 헐벗었던 1963년 그 허기의 시대에 시인으로 출발하여 암울한 현실에 저항의 칼날을 내세우는 한편 새로운 표현미학을 탐색하던 시인은 60년이 넘는 시인의 공력을 거쳐 무욕의 미학, 무심의 사랑의 자리에 이르렀다. 그가 걸어온 시인의 길이 어찌 우연의 소산일 것인가? 하늘에 새와 달과 별의 길이 있듯 그는 김종해의 길을 택하여 그만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그 독자적인 길의 여정과 행로에 무욕의 축복이 깃들 것이다.” (이숭원 문학평론가, 서울여대 명예교수)

 

 

 

 

<시집 속 시 맛보기>

 

 

 

를 버리다

 

김종해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할 쓰레기 속에

아직 못다 버린 쓰레기 시들이

너무 많다

시인들이 쏟아내는 쓰레기 같은 시

아무 의미도 감흥도 생명마저도 갖지 못한 시

한 번도 남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시

수많은 시인들이 쓴 쓰레기 시속에

내가 쓴 쓰레기 시도 포함된다

쓰레기 분리 배출장에 가서도

내가 갖다 버릴 쓰레기 때문에

나는 혼란에 빠진다

시인들이 의미 없이 세상에 쏟아내는

엄청난 분량의 쓰레기 시들,

, 고민 없는 시인들만의 자기만족 사회!

종량제 봉투 속에 함께 넣어서

버려야 할 저 무의미한 시들

혹독한 겨울이 한세상 지나기까지

한 번쯤 사람들 마음속에

따뜻한 군불마저도 지피지 못했던 시들

쓰레기 분리 배출장에 가서도

버려야 할 저 시들 때문에

나는 괴롭다

 

—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문학세계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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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지폐

 

김종해

 

원효로 옛 전차 종점 부근의, 원효로 45번지, 박목월 선생님이 이승을 떠날 때까지 사시던 지번地番 주소지. 추석이나 설날 명절 때가 아닌 시협詩協 일로 혹은 시월간지 심상心象일로 선생님이 자주 나를 불러들이던 선생님의 서재. 대문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철문이 철컥 열리고 사모님이 다급하게 신발을 끌며 나오셔서 김 선생, 오늘은 정치 이야기하지 말아요.” 선생님의 지병인 고혈압 때문에 나는 선생님 앞에서 시국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시협 일과 심상心象지의 진행 상황만 브리핑해 드린다. 나는 선생님을 사랑하지만 선생님의 고혈압을 걱정해서 젊은 시인이 생각하는 정치 현실 이야기를 할 수조차 없다. 사모님이 차려주시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현관 바깥 감나무를 지나 철문 앞까지 걸어 나오면 사모님이 내 옷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시던 따뜻한 지폐 몇 장, 청량리 지나 상계동 변두리 끝까지 타고 갈 수 있는 택시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 따뜻한 지폐 몇 장. 철문 담장 위에는 아아, 밝고 환한 달이 떠서 세상을 비추던 날도 있었다.

 

—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문학세계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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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입성入城

 

김종해

 

정월 대보름날 사흘 지난 1962218일께, 나는 고향 부산을 떠났다. 고향 바다와 초장동과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자를 부산 본역本驛에 남겨두고 슬프고 긴 기적 소리와 함께 서울행 밤기차가 움직이자 기차 맨 끝 꼬리칸에서 난간을 붙잡고 나는 통곡하였다. 수중에는 1,450원뿐, 이 가운데 서울행 기차삯이 790이제 나는 다시 고향 부산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십계十戒의 모세처럼 광야의 사막을 혼자서 나는 걸어가야 하리라. 넓고 낯선 저 사막, 닫혀 있는 서울의 어느 집에서 한 모금의 물이라도 얻어 마실 것인가. 먼 사막의 광야를 걸어가는 히브리인 모세가 나에게 와서 밤낮으로 회중전등을 비춰 주었다. 나는 일어서서 사막 위를 걷고 또 걸었다.

 

—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문학세계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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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詩歷 60년, 김종해 시인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삶과 존재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함께 따스하고 서정적인 시편을 발표해왔던 한국 시단의 원로 김종해 시인의 새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가 문학세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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