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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시인동네시인선으로 출간

신간+뉴스

by 미디어시인 2023. 4. 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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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구조적 합일체

 

 

하린 기자

 

2012시산맥으로 등단한 김대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가 시인동네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김대호 시의 중심은 자기 고백의 객관화이다. 주체가 어떻게 타인에게 접촉하여 물화 되는지를 그의 시는 표현하고 있다. 또한 시의 기능적인 면에서 대중적 가벼움과 순수미학적 난해를 잘 조합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시 편편에 녹아있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실천이란 무엇입니까>는 사소한 생활의 풍경들이 실천되는 장이기도 하다. 올봄에 핀 명자꽃이 지난 시절의 명자꽃이 남기고 간 유언을 실천하고 점심에 먹은 국수도 벚나무 근처에 흩뿌려져서 자신을 실천한다.

그의 실천 의지는 <세월>에서도 나타난다. 어린 나뭇잎은 어느새 나무의 근육이 되고 주위의 소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쓸모 없는 시간에 보일러실로 가서 옹벽에 서 있는 긴 빗자루 쥐고는 건물 외곽에 붙은 거미줄을 없애기도 한다. 하여 시인에게 실천이란 물리적인 실천과 정신적 실천이 함께 동력으로 작동하는 복합적 실천인 셈이다. 해설을 쓴 우대식 시인에 의하면 실천이란 보이는 것의 배후에 가로놓인 보이지 않는 것의 움직임이다. 추상과 관념에 대한 의미가 현상적(실천적) 이미지로 발현된 것이다.

 

김대호 시인의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실천과 함께 나와 당신의 구조적 합일이다. 어떤 이질적 성분같이 서로 비껴가기만 하는 주체와 객체의 일원화는 사실 불가능의 영역일 수 있다. 그러나 시라는 장르가 어차피 불가능의 최소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불가능과 불가해가 시의 식량이라면 그것의 배설 구조는 주체와 객체의 일원화가 아니겠는가. 불가능은 가능의 다른 해석일 뿐 실천 의지는 어디에나 숨어 있기 마련이다. 시인은 그 미세한 틈을 파고든다. 어떻게 틈 안으로 진입한다 해도 다시 돌아나올 수 없는 그 막막한 세계로 시인은 자진해서 가고 있다.

 

두 권의 시집을 통해 생활의 극사실과 실천 이미지를 보여준 만큼 시인의 다음 행보는 이것들과 결별하는 다른 무엇이 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그가 시를 통해 천착한 것이 나와 당신의 합일이고 실천에 대한 불가능한 모색이었다면 이젠 다른 세계가 탄생해야 할 것이다. 불가능이란 질문의 방식이지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집 속 시 맛보기>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김대호

 

올 봄에 핀 명자꽃은 작년에 피었던 명자꽃의 

유언을 실천합니다

 

내년에 올 명자꽃은 올 봄에 피었던 명자꽃의 유언을 이어받아

명자꽃 무리의 집성촌에서 또 실천될 겁니다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점심엔 국수를 삶아 먹었습니다

혼자 끼니를 때우는 일이 심심해서

창밖 푸른 잎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벚나무를 보았습니다

저 벚나무는 십 년 넘게 푸른 잎을 실천 중입니다

나는 다 먹고 남은 국수 국물을 들고 나가 벚나무 근처에 흩뿌렸습니다

그곳에서 국수 국물도 실천 됩니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칼자루 없는 칼을 쥐고 그를 미워합니다

 

하루를 실천하기 위해 누우면 어디선가 피비릿내가 납니다

실천이란 무엇이고 실천은 어떤 냄새를 가졌을까요

실천에게 배후가 있을까요

 

나는 방금 태어난 햇살을 실천하기 위해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시인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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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

 

​​김대호

 

당신이라는 간이역을

경유하지 않고 나의 세상으로 직항하는 노선은

애초에 없었다는 얘기

당신을 만져야 내가 만져지는 얘기

만나면 서로 혀를 나누는 키스를 이제 포옹으로 대신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얘기

그리고 적당히 통속해진 당신이 보기 좋았다는 얘기

그것이 슬퍼질 때, 눈물 대신 주먹을 꽉 쥐게 되더라는 얘기

밥값을 서로 내려고 살짝 밀쳤다는 얘기

당신이 사라지기 전 거리에 내리는 첫눈

첫 세상

반짝이는 불빛들

 

―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시인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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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주소

 

김대호

 

바람을 구부리는 것은 곡선의 힘

당신의 계절에는 바람의 주소가 등재돼 있다

꽃피고 덥고 쌀쌀하고 눈이 퍼붙는 계절들은 울음을 가두는 수위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수위는 항상 위험해서 수시로 수문을 열어야 한다

꽃이 만발한 봄날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서 

그 무렵에는 자주 나라를 비웠다

 

직선이던 길은 오래 걷고 다녔더니 어느새 곡선이 돼 있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당신의 어깨는 조금씩 기운다

지나온 길 역시 곡선으로 기울어 노안이 온 눈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 희미한 조도가 당신의 현대이다

시간이 당신을 이 세상에서 지울 때 어떤 잔상이 남을까

유효한 잔상은 며칠일까

바람이 곡선으로 분다고 느끼는 것은 당신의 생이 구부러졌기 때문일 테지만

그 태도가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다

 

불행이 발달한 동네에서 

당신의 이웃은 오해에서 이해로 이주하지 않을 것이다

불행은 끝내 완결되지 않겠지만 그 불행으로 한 시절 잘 살았다

불행에는

바람이 불어도 휘발되지 않는 주소가 있다

 

―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시인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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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시인동네시인선으로 출간 - 미디어 시in

하종기 기자 2012년 ≪시산맥≫으로 등단한 김대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가 시인동네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김대호 시의 중심은 자기 고백의 객관화이다. 주체가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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