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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동주 문학상을 수상한 안은숙 시인의 시집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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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시인 2023. 4. 1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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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열매처럼 단단한 서정적 은유

 

 

인터뷰 진행: 이미영 기자

 

 

201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안은숙 시인이 2022년 제7회 동주 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시집 지나간 월요일쯤의 날씨입니다(여우난골, 2021)를 낸 지 1년 만의 수상이다. 시인은 수상집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달을 쏘다, 2022)를 발간하면서, 정갈한 시행의 정결한 상징과 은유로 강인한 견인주의자의 시세계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2017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반쪽 지구본으로 당선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깊은 성찰과 사유를 자신의 시와 수필에서 보여주고 있는 안 시인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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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늦게나마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시인의 말에 은유를 데려왔으니 내 문장이 나의 언어가 닿을 수 있는 세계에 온전히 깃들 수 있기를바란다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시인님에게 은유란 무엇일까요.

 

A1: 은유란 특정 개념을 이해하고 전달하고자 사용하는 일종의 도구 같은 거죠. 단순한 개념을 넘어서요. 제게 은유란, 사물에 영혼을 담아 투영하는 것으로 시화(詩化)하여 세계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AI 시대가 도래하여 앞으로 인공지능에 밀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창의력까지는 뛰어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은유는 창의적인 작업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더 진화하고 특별한 다른 세계를 창조하죠. 상상이나 유희, 예술로써 말입니다. 자연과 사물 등의 상태를 다른 것과 연결하는 특별함으로 의미를 더 깊이 전달하고 확장합니다. 이런 상상력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은유(隱喩)가 더 깊은 의미를 담는 세계로 가 닿았으면 합니다.

 

Q2: 시집 전반에 의상과 관계되는 시가 많이 눈에 띕니다. 설레는 의상,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 쇠갈고리들, 옷걸이. 시인님의 시선이 의상이라는 물상에 닿았을 때 파생되는 존재론적 의미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A2: 의상은 삶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존재(存在)를 나타냅니다. 또한 관계(關係)를 맺게 하는 매개체 역할도 하는데요, 어쩌면 옷은 물질적인 존재뿐 아니라 존재론적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관계성과 소통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옷이 닿았을 때 인간과 자연과 사물과의 상호작용, 사회적 맥락에서의 연결성이 내포된 의미로써 그 존재를 알리려는 것입니다.

 

Q3: 박주가리에서 누구든 주머니를 뒤집을 때가 있다는 듯/ 공중에 주머니 하나 털리고 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또 시 할라빵에서는 끊임없는 시중을 원하는 것들의/ 머리를 잘 땋는다는 건, 내겐 아주 사소한 일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헌신, 연민, 외로움 같은 감정들이 느껴지는데요. 시인님은 화자를 통해 독자들과 무엇을 공유하고 싶으셨나요.

 

A3: 주머니는 주로 무언가를 담습니다. 소유한 것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인간이 자궁에서 태어나듯 새로운 것은 생성이 되고, 특별해지고, 사소해지기도 하며, 소멸의 과정을 겪습니다. 여러 감정 중 헤겔은 그리움이란 우리가 가진 어떤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 했습니다. 손실과 상실에서 오는 감정은 부재함으로 갖게 되는 슬픔, 외로움, 연민입니다. 이런 감정들은 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배경이나 사회적 상황에서 비롯되는데요. 감정의 근원을 찾고자 함입니다.

 

Q4: 시집 2부에 슴베연작시 3편이 나옵니다. 슴베는 호미, 낫 등의 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한 부분을 말하기도 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시집에 있는 수많은 시들 중 슴베로 나무를 묘사한 이 시들이 가장 서늘하게 읽혀지는데요, 특히 슴베2의 소제목인 나뭇가지들의 난도亂刀는 제 곁에 붉은 피를 두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슴베에 대한 시인님의 생각을 부연하여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4: 슴베는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큰 역할을 하죠. 전체를 완성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가지를 이리저리 뻗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마치 수많은 날을 가지고 있는 검()과 같습니다. 나뭇가지가 돌아나간 매듭 부분에 슴베가 있어 마치 칼을 쥐고 있는 형상입니다. 칼끝의 방향은 제각각이죠. 여름엔 그 칼끝마다 푸른 잎을 경작하지만, 겨울엔 잎을 떨군 시린 몸으로 날들을 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철 혹한이 몰려오면, 나무들은 물리칠 기세로 절그럭 또는 윙윙대며 나뭇가지를 휘두릅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정작 붉은 피는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신사적이고 어질고 정의롭습니까. 병불혈인, 원미래복 (兵不血忍, 遠爾來服) 아닌가요.

 

 

Q5: 끝으로 시인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더하여 독자들과 함께 했으면 하거나 봄에 읽기 좋은 시가 있을까요. 정성을 다한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A5: 저의 향후 계획은 사진이 있는 에세이집 또는 시집을 출간하는 것입니다. 독자들의 관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에 수록된 푸른 구름 한 차입니다. 생동감이 넘치는 이 계절에 모두가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시집 속 시 맛보기>

 

 

 

푸른 구름 한 차

 

안은숙

 

 

고랭지 넓은 밭에

푸른 구름의 재배지가 있다

겹겹의 프로펠러를 달고, 날아오르려는 푸른 밭

푸른색 잉크로 그은 밑줄 같은 고랑을 따라

포기로 뭉쳐진 구름의 재배지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우주의 텃밭

 

아래서부터 피어오른 길들이

이곳에 와서 푸른 구름밭의 문이 된다

 

하늘의 계절과 땅의 계절이 만나는 곳

구름의 씨앗이 파종되는 해발 천사백 미터

푸른 구름이 몰려와 있는 푸른 밭

 

안개를 비료로 키워낸 아삭한 구름들

몇 겹을 벗겨내면

노란 속 포기들이 맑은 날처럼 들어있다

 

멀리서 보면 고여있는 폭우 같다

 

늙은 농부가 돌을 고르고 만든

고산의 가쁜 숨소리 같은 식량의 재배지다

 

푸르른 이파리를 뭉게뭉게 피워낸

방금 수확된

저 구름의 포기들

 

트럭에 실려 가는 푸른 구름 한 차,

 

물소리 같은 경매가 끝나면

소름에 절여질 단내 품은 출하

싱싱한 낙찰에 포기들마다

매콤한 양념을 품을 것이다

 

고랭지의 저녁이 구불구불 어둑한 길을 따라 내려간다

가끔 브레이크를 밟는지 먼 산 여름새가 운다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 달을 쏘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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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려있는 용수철은 온순하다

 

안은숙

 

용수철은 식물 혹은 동물

그것은 혁명도 아닌 목적의 억제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가 튀어 오르면

어디로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

 

살살 달래어보는 한낮

말보다 글로 다스려야 할 때

나는 볼펜을 꺼내어 볼펜 끝을 누른다

 

말에 숨어있거나 구불거리는 꾀가 있다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른다

저 알 수 없는 방향성

튀어 오를 때마다

살갗의 털이 곤두선다

 

눌려있는 용수철은 참으로 온순하다

 

비 오는 날

튀어 오르는 빗방울을 본 적 있다

용수철 위로 피어나는 꽃들

저 무한한 탄성 끝에

범람하는

흙탕물이 있었다

 

—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 달을 쏘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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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베2 -나뭇가지들의 난도亂刀는 제 곁에 붉은 피를 두지 않는다

 

안은숙

 

마치 뭉친 결을 풀 듯

겨울 혹한이 모여드는 계절이 돌아왔다

 

겨울은

나무들이 잠시 미뤄두었던

복수의 계절이 아닐까

 

일제히 나무들이

차가운 날들을 세우고 있다

 

여름이 오면

푸른 잎을 키우는

검의 날이 푸르고,

그 날렵한 칼날에

푸른 잎들을 경작한다

 

지난봄

슴베에서 움튼 나뭇가지 하나는

단도처럼 짧았다

 

슴베에서 칼날 하나가 연금되는

시간이 어수선하다

 

한겨울

웅웅거리는 소리는

나무의 매듭에서 나오는 소리다

 

그러나

나뭇가지들의 난도는

제 곁에 붉은 피를 두지 않는다

 

—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 달을 쏘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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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동주 문학상을 수상한 안은숙 시인의 시집 - 미디어 시in

인터뷰 진행: 이미영 기자 201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안은숙 시인이 2022년 제7회 동주 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시집 『지나간 월요일쯤의 날씨입니다』 (여우난골, 2021)를 낸 지 1년 만의 수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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