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에덴
유계자
당분간 흰 세상
한 주먹 눈을 뭉쳐 돌돌 굴린다
순식간에 불어난 눈덩이
굴려놓은 두 개의 세상을 이어주고
빛나는 것만 보라고 단풍잎으로 눈을 붙여주고
나뭇가지로 한껏 콧대를 높였다
이왕 웃으며 살라고 웃음도 챙겨주고
사과를 싸던 분홍보자기로 옷을 입혔다
보기에도 좋아 아침저녁 안색을 살폈다
가끔 참새가 다녀가고
늙은 살구나무가 그늘을 늘여 어깨를 두드려도
못 들은 척
햇살 한번 뜨겁게 지나가자
우지끈 옆구리가 기울어지고 귀에 걸린 웃음도 지워진다
마지막 남은 콧대가 발등을 찍고
너는 물이니 물로 돌아가라
몸이 빠져나간 바닥이 흥건하다
널브러진 분홍보자기
탁탁 털어 빨랫줄에 올려놓자
만장처럼 펄럭인다
등 뒤에서 누군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 『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 지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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