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의 근황
구애영
계단은 왜 팍팍한 걸까
바닥을 밟을 때마다
고관절이 삐꺽거린다
영락없이 고장 난 재봉틀의 톱니소리다
건너편집 철재 문이 삐끗 열리다가
이내 쾅 닫힌다
손에 들고 있던 헌옷이 움찔 놀란다
내려서려는 발목만큼의 무게
허벅지를 타고 내 복숭아 뼈를 감싼다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나는 없고 허울을 쥔 여자가 머뭇거리고 있다
풀린 실밥의 속옷들 칸칸마다 남겨놓고
내 그림자가 털 부스러기 있는 쪽으로 조금 더 길어진다
남겨놓은 흔적으로부터 나는 계속 가까워진다 아니 멀어진다
생각은 분주해지는데
어미 잃은 고양이 표정이 자꾸 떠오르려는데
밖은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내가 여태 품고 있었던 고아의 감정이 더욱 선명해진다
발단이 있으면 전개가 있고 위기가 오겠지만
위기만 너무 일찍 찾아온 걸까
그 새끼고양이는 바싹 쪼그라진 뱃가죽을 어디에 눕혔을까
내 슬골은 계단의 바깥을 떠돌기에
무게를 모르고
또한 지금을 모르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이*
유령처럼 더듬거리며 계단을 다시 오른다
어린 고양이 울음소리가 굴러 떨어진다
슬픔엔 낙법조차 있을 수 없다는 듯
*기형도의 빈집에서 차용.
― ≪포엠포엠≫ 2019년 겨울호
구애영 시인 _ 계단의 근황 < 포토포엠 < 기사본문 - 미디어 시in (msi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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